올여름, 쓰다

토마토튀김
2024/06/26
회 한 점, 해 한 점
니체를 읽으며 글을 쓰는 소모임이 있는데, 글감이 '여름'이었다. 그래서 쓴다.

***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날짜도 제대로 도려낸 것이 7월 4일이다. 당연히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어서 좋다는 것은 아니고, 7과 4, 이 숫자의 균형이 몹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도 내가 1974년생인데, 생일이 7월 4일인지라 그 7,4,7,4, 반복의 리듬에 안정감을 느낄 지경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이 참 좋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 내 생일은 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나는 늘 교실 맨 끝, 뒷문 옆 복도 쪽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하든지 잠을 자는 척을 했다. 키도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 여자애가 이름까지 '황하나', ㅎ이 겹치고 또 겹쳤으니 학창 시절 내내 끝 번호를 면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학급 인원이 홀수일 때는 짝이 없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게 너무 창피했었다. 혼자 저 뒤에서 멀뚱히 서 있는 것이… 더불어 7월 초는 늘 장마였다. 잠깐 해가 반짝 비쳐도, 장마 전선이 몰고 오는 그 습한 기운은 해가 갈수록 더했다. 이미 반세기를 넘게 살아버린 올해, 2024년의 여름도 역대급 더위를 몰고 올 것이다. 해마다 그 기록은 경신된다. 여하튼 생일날 아침에 일어나면 대부분 늘 바깥은 어두웠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든가 태풍이 세상을 쓸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나 학사일정은 차치하고, 나중에 조금 커서는 듣는 말은 모조리 다 이거였다.
"날을 이날로 받았으면 시간이라도 좀 잘 받지 왜 그랬냐."
그렇다, 사주 이야기다. 사주가 별로 ‘좋지 않다’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었다. 임신하고 만삭이 될 무렵 임신 중독증에 걸린 엄마는 제왕절개수술로 나를 낳았다. 즉, 내가 세상에 나올 순간을 분까지는 몰라도 시간 정도는 일정에 맞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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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으며 글을 씁니다. 에세이집 <시나리오 쓰고 있네>,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를 발간했습니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씁니다. 몰두하고 있습니다. 일 년 중 크리스마스를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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