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오
라지오 · 구름 구두를 신은 이야기보부상
2024/05/21
캪틴큐(롯데주조)

‘국산 양주’가 쏟아져 나온 것은 1980년대입니다. 갑작스런 국내산 양주들의 출현은 박정희 대통령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측근에 의해 저질러진 대통령 시해사건은 충격과 함께 큰 여파를 남겼습니다. 범행에 사용된 총기의 구경부터 연회장의 여가수가 부른 노래까지 모든 것이 화제가 되었지요. 그런 관심은 엉뚱한 곳까지 미칩니다. 범행이 일어난 ‘안가’와 마지막으로 마신 술도 그 가운데 하나였지요. 모내기철마다 농민들과 소탈하게 막걸리를 마시던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마신 술이 양주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국민들에겐 금지시킨 양주를 대통령이 마셨다는 사실에 분개하기보다 비교적 서민적인 ‘시바스리갈’이라는 양주를 마셨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여대생을 앉혀놓고 벌인 연회보다는, 궁정동에 있다는 ‘안가’가 화제가 되었지요. 이후 시바스리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마신 양주가 되었고, 접대부들과 술을 마시는 룸살롱이 폭발적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안가와 시바스리갈에 접근하지 못하던 대중들은 ‘보급형 안가’인 룸살롱에서 국산양주라도 마시며, 대통령을 회고하려던 것일까요? 
소주와 막걸리가 전부였던 대중들은 양주의 세계에 눈이 떴습니다. 은밀히 거래되던 양주 소비가 급증하며, 그 가운데서도 시바스리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요. 이런 국민들의 요구에 정부가 내린 조치가 ‘국산양주’였지요. 당장 비싼 수입양주를 풀어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양주는 아니면서 양주 기분을 내게 하는 국산술이 필요했겠지요. 그렇게 등장한 것이 럼주의 캡틴큐, 진의 드라이진, 보드카 하야비치, 브랜디의 나폴레온 등과 같은 국산양주였습니다. 
국산 양주는 양주보다는 ‘국산’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원액은 냄새만 풍기고, 소주를 만드는 주정에 색소와 향료를 섞은 국산양주는 ‘유사양주’라고도 불렸지요. 원액이 20%를 넘으면 318%의 주세를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몽골여행과 유목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모든 쓸데없는 이야기의 즐거움을 나눕니다.
11
팔로워 22
팔로잉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