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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로 ‘서울-부산 3번 왕복+100Km’ 거리를 걸은 이유 [안치용의 영화리뷰(영화평) 『영혼의 순례길(Paths of the Soul』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집이나 에세이집 제목에는 '길'이 들어가는 게 많다. 길에서 길을 묻거나 찾거나, 또는 길에게 묻거나 찾는다. '에서'와 '에게'의 차이는 단지 책 이름으로는 크지 않지만, 정말 묻거나 찾고자 한다면 본질적인 차이를 발생시킨다. 즉 길에게 길을 묻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길을 찾고자 한다면 오직 길에서 길을 물어야 한다. 길에서, 길을 물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는 까닭은, '에서' 자체가 '찾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알쏭달쏭한 이 말을 쉽게 풀어 쓰면, 직접 길에 나서지 않고 예를 들어 사유를 통해서도 (길에게) 길을 물을 수 있지만, 길을 나서서, 즉 길 위에서 (길에게) 길을 묻는 실천의 구도는 몸을 찾음에 정향(定向)하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요한다. 몸을 활용한 찾음은 책상머리 구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찾음이다. 새로운 차원은 당연히 길에서 열린다. 길을 대상으로 마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장양 감독이 1년 동안 해발고도 4000m의 험준한 길 위에서 그들과 동고동락하였음은 물론이다. 보는 사람보다는, 만드는 사람과 출연한 사람이 기독교식으로 말해 더 큰 은혜를 받지 않았을까. 그러나 보는 사람에게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잖은 은혜가 주어진다. "다큐멘터리식으로 대본도, 전문 배우도 없이 촬영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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