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애도연습] 애도는 시작과 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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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불쑥 상실의 슬픔이 찾아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애도는 시작과 끝이 있을까? 누군가 애도의 끝이 있다고 말해준다면 안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도의 끝에 다다르면 일상과 슬픔 사이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 

한 남성은 스스로 애도의 끝을 마련해보려고 했다. 오랫동안 돌보았던 어머니를 떠나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상실감에 일상을 지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안치된 납골당에 매주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납골당에서만 슬퍼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슬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슬픔의 때와 장소를 정해놓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애도의 끝에 다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상실의 슬픔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애도 방식을 되돌아보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애도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일’처럼 하려고 했던 거죠.”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그는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했다. 매일 일과 돌봄을 병행했고, 자주 빚어지는 친인척들과의 갈등도 중재해야 했다. 그에게 감정은 당장을 살아내기 위해 ‘처리’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에도 그는 슬픔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다. 돌봄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도 그런 마음을 부추겼다. 돌봄을 하면서 이루지 못했던 내 일의 성과를 이뤄내고 싶었고,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휴식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슬픔은 소화되지 못한 채 고여만 갔다. 애도를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다시 슬픔의 원점으로 돌아오는 ‘비효율’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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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
조기현 인증된 계정
작가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을 썼고, 영화 <1포 10kg 100개의 생애>를 찍었다.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을 운영하며, 동료들과 함께 아픈 이를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기획과 활동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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