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애도연습] 소멸을 준비해야 할 때 (3)


2020년 12월 31일, 혼인하고서 3년 간 일했던 청년협동조합에서의 일이 끝났다.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해 주었지만 언제까지고 알 수 없을 아버지 돌봄을 병행하며 반상근으로 그만큼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할 순 없겠다 판단했다. 게다가 이젠 1인 가구가 아니라 2인 가구이며 모아놓은 돈도 넉넉지 않으니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 한 자격지심 혹은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쩌면 뒤늦게 2인 가구가 살아갈 만큼의 적정임금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Covid-19 펜데믹으로 격주 주말과 연휴 때마다 했던 아버지 직접 간병(돌봄)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반상근’과 ‘직주근접’이란 조건으로 일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선택지는 넓어졌다.
한옥학교에서 부재를 조립하며 실습하고 있다. ©전형민
처남 형님(아내의 오빠)과 전화로 서로 안부를 묻던 중 내게 강원도에 있는 한옥학교에서 한옥목수 일을 배워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해 주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 해당 한옥학교 출신이 있는데 일을 잘 하더라며 혹 목수 일에 관심 있으면 알아보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2021년 4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 간 강원도의 한옥학교에서 한옥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내 일 경험, 커리어와는 상당히 다른 결의 일이었다. 그야말로 육체노동, 블루 워커다. 비록 짧은 기간의 배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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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시인-되기'는 여전히 요원하고 문단에 등단한 적 역시 없다. 대학 졸업 후 개신교 선교단체 간사로 3년 간 일하다 2016년, 목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상시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되자 하던 일을 관두고 격주 주말과 명절 연휴 때마다 병원에 들어가 그를 돌보게 된다(최근 3년간은 Covid-19 팬데믹으로 그마저도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한 인연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일상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1년, 이후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협동조합으로 이직해 커뮤니티 매니저로 3년을 일했다. 2021년, 기술을 배워봐야겠다 싶어 한옥목수 일을 배우고 실제 문화재 복원 및 보수 현장에서 초보 한옥목수로 일을 하다 열악한 근무여건(근로기준법 미준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결국 그만두게 된다. 짧게라도 배운 기술과 일 경험이 아쉬워 비록 목수는 아니지만 2022년엔 수원 화성행궁 복원 현장에서 인턴 공무로 6개월 간 일했다. 2024년 현재는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활동가로 근무하며 프리랜서 작가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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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할 수 있는 돌봄안전망을 만들어 갑니다. 아픈 이를 돌보는 청년들의 자조모임에서 시작해, 돌봄청년들과 돌봄연구자들이 모여 가족, 성별, 세대를 넘어 모두를 위한 돌봄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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