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애도연습] 소멸을 준비해야 할 때 (1)

나의 ‘아버지 돌봄’은 그 때부터 예고된 것일지 모른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때부터거나 아니면 그보다 오래 전, 아버지가 형틀목수로 일할 때부터거나. 예고된 돌봄 상황은 그러나 실제론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2016년,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에 그토록 불안해했던, 어린 시절 철없이 조금은 바라기도 했던 아버지의 사고가, 죽음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의학적으로 그는 죽지 않았지만 그를 이루는 어떤 부분은 죽었다. 그 날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 날, 그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나는 앞으로 그를 이루는 어떤 부분, 사라진 그의 일부를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까?
그 날 그러니까 2016년 5월 4일 저녁, 막 사무실을 나서 퇴근하려는데 휴대폰에 “아버지”란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받기도 전에 뭔가 ‘쎄한’ 느낌. 직관은 빗나가지 않았다. 전라남도 여수시의 한 빌딩 건축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던 전OO씨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며 그의 아들이냐며, 뇌수술이 시급하니 수술 동의를 구하는 의사의 전화였다. 두려움과 위기감에 사로잡힌 나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채 뇌수술에 동의했다. 통화가 끝나고 잠시 멍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단 내려가야 했다. 동생에게 아버지 소식을 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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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시인-되기'는 여전히 요원하고 문단에 등단한 적 역시 없다. 대학 졸업 후 개신교 선교단체 간사로 3년 간 일하다 2016년, 목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상시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되자 하던 일을 관두고 격주 주말과 명절 연휴 때마다 병원에 들어가 그를 돌보게 된다(최근 3년간은 Covid-19 팬데믹으로 그마저도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한 인연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일상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1년, 이후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협동조합으로 이직해 커뮤니티 매니저로 3년을 일했다. 2021년, 기술을 배워봐야겠다 싶어 한옥목수 일을 배우고 실제 문화재 복원 및 보수 현장에서 초보 한옥목수로 일을 하다 열악한 근무여건(근로기준법 미준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결국 그만두게 된다. 짧게라도 배운 기술과 일 경험이 아쉬워 비록 목수는 아니지만 2022년엔 수원 화성행궁 복원 현장에서 인턴 공무로 6개월 간 일했다. 2024년 현재는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활동가로 근무하며 프리랜서 작가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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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할 수 있는 돌봄안전망을 만들어 갑니다. 아픈 이를 돌보는 청년들의 자조모임에서 시작해, 돌봄청년들과 돌봄연구자들이 모여 가족, 성별, 세대를 넘어 모두를 위한 돌봄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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