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애도연습] 소멸을 준비해야 할 때 (4)


돌봄과 애도연습

2022년 1월, Covid-19 펜데믹은 여전하여 예전처럼 어느 때고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없었다. 확산세가 한참 치솟을 때마다 면회‧외출‧외박이 전면 금지 되곤 했다. 당연히 격주 주말과 연휴 때 역시도 내가 아닌 간병인이 계속 아버지를 돌봤다. 지금까지도. 이건 나만 겪는 돌봄과 노동의 위기가 아니란 얘기다. 총체적인, 사회 전체가 겪는 돌봄과 노동의 위기다. 그동안 모른 체 해왔던 위기.

그런 위기 속에서 나와 비슷한 돌봄 경험, 즉 가족 돌봄 경험이 있는 청년들, 이른바 ‘영 케어러’들을 만나며 위로를 얻곤 했다. 일종의 자조모임이었다.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다 떠나보낸 청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청년 등. 함께 돌봄 경험을 말하고 돌봄 관련 책을 읽고 일상을 나누며 자조모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위에서 말한 아버지의 고관절 골절 상황과 함께 병원에서 들었던 ‘속설’을 나눴다. “어르신들이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면 3년을 못 넘기더라”는 속설. 아버지를 돌보던 간병인과 간호사들의 이야기였다. 비록 직접 내게 말하진 않았지만 엄연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던 말들이다. 썩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덜컥 겁을 먹게 됐다. 아버지가 3년 안에 돌아가신다면?
덜컥 겁을 먹은 만큼 덜컥 아버지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만 같았다. 그의 죽음은 언제고 다가올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이다. 그러므로 겁을 먹을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그의 죽음을, 정확히 말하면 그의 죽음에 대한 상상을 언제까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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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시인-되기'는 여전히 요원하고 문단에 등단한 적 역시 없다. 대학 졸업 후 개신교 선교단체 간사로 3년 간 일하다 2016년, 목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상시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되자 하던 일을 관두고 격주 주말과 명절 연휴 때마다 병원에 들어가 그를 돌보게 된다(최근 3년간은 Covid-19 팬데믹으로 그마저도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한 인연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일상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1년, 이후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협동조합으로 이직해 커뮤니티 매니저로 3년을 일했다. 2021년, 기술을 배워봐야겠다 싶어 한옥목수 일을 배우고 실제 문화재 복원 및 보수 현장에서 초보 한옥목수로 일을 하다 열악한 근무여건(근로기준법 미준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결국 그만두게 된다. 짧게라도 배운 기술과 일 경험이 아쉬워 비록 목수는 아니지만 2022년엔 수원 화성행궁 복원 현장에서 인턴 공무로 6개월 간 일했다. 2024년 현재는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활동가로 근무하며 프리랜서 작가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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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할 수 있는 돌봄안전망을 만들어 갑니다. 아픈 이를 돌보는 청년들의 자조모임에서 시작해, 돌봄청년들과 돌봄연구자들이 모여 가족, 성별, 세대를 넘어 모두를 위한 돌봄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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