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얼굴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1/25
  자리를 이탈하면 글을 쓰기가 힘들다. 노트북을 갖고 시댁에 갈 순 없으니 핸드폰만 믿고 길을 나선다. 시부모님 앞에서 쓸 수 없어 아이들이 잠들면 곁에 누워서 핸드폰을 켠다. 글쓰기 어플을 열어 하얀 백지에 검은 글씨들을 무작정 새겨 넣는다. 누워서 오랜 시간 핸드폰을 붙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니, 앉았다가 다시 누웠다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글을 쓴다. 퇴고를 할 시간이 없어 글을 결국 올리지 못하고 그저 쌓아두기만 한다. 글에도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지나버리면 게시하지 못한다.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오겠지 하며 보관하는 수밖에.

  나름 매일 끼적거렸는데도 어젯밤 제대로 글을 쓰려니 한 문장 한 문장이 버거웠다. 마치 글자를 막 깨우친 사람이 첫 글을 쓰는 것처럼 적절한 단어도 표현도 잡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흘려보냈다. 다 쓴 글을 읽어보니 애초에 하려던 말은 흐려져 있고, 새로운 생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한 땀 한 땀 기워내듯 써낸 글을 한참 멍하게 들여다 보다 결국 퇴고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쓰러져 잠을 청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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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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