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두 노래: <변해가네>, <나의 노래>
2024/01/31
노래는 위대한 문화적(혹은 문학적) 발명품이다. ‘음악’이 아닌 ‘노래’를 특정한 것은 그것이 포괄적 문화의 영역에서 특정한 문학의 영역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진입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노랫말을 입혀 부르는 가창 행위로 인해 음악은 느끼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실행하는 것으로 변한다. 음악은 가사와 가수(목소리)를 통하여 듣는 이의 삶에 한결 직접적으로 파고든다는 말이다. 음악에 삶을 내밀하게 끼어 넣을 때 노래는 위대해진다.
위대한 노래는 분명 여럿이지만 나에게 직접 파고드는 어느 하나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발견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문득인데, 지하철을 기다리며 평소와 같이 듣던 노래가 짯짯하고 선명한 번뜩임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그런 순간 우리는 익숙한 노래에서 위대함을 느낀다. 알고리즘이 인도한 플레이리스트에 잇달아 나온 두 곡에서 연달아 위대함이 발견되는 순간이라면, 그 노래들을 부른 가수는 또 한 번 위대해진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두 곡을 듣는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스스로 엄청난 외골수이자 고집쟁이임을 고백하는 당신이 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갔던 당신은 약간은 자랑스러운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는데(실제로 김광석은 이 부분을 덤덤한 듯 당당하게 부른다), 당신은 아마도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일, 즉 예술의 일을 하는 사람일 테다. 물론 자신이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하는 일은 예술의 영역 바깥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발생하므로, 우리는 당신의 삶에 우리의 삶을 포갤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노래의 위대함은 불현듯 시작된다.
“함께 가자” 손 내밀던 누군가를 애써 밀어내면서, 외로움을 “길지 않은” 인생의 필연으로 생각하며 걸었던 당신은 어느 고지 앞에 다다랐을 ...
나의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도 특히 진솔한 가사와 다정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라 생각 합니다. 그의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을 다정하게 감싸며 감성을 자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