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III) - 어디로 넘었는가? (3)

이영록
이영록 · Dilettante in life
2023/01/11
  앞 두 편(1편, 2편)에 이어집니다. 원전은  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I) - 폴리비오스(Polybios)의 '역사(Historia)'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II) - 리비우스(Livius)의 '로마사(Ab urbe condita)'가 참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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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서는 한니발이 론 강 도하 후 4일 행군해 '섬'이란 곳까지 온 경로를 추적했습니다.  이 때의 위치가 론 강과 다른 강이 만나는 지점인데, 이세르 강인지 드롬 강인지는 아래에서 보겠습니다.
   아래 지도 4는 주로 논의되는 다섯 경로를 표시했습니다. 그 외 폴리비오스와 리비우스가 언급한 부족들이 거주하던 지역(물론 추측이 많습니다)을 적었습니다.

▼ 지도 4. 한니발이 론 강 도하 후 토리노(Torino)까지 밟았을 만한 경로 및, 경로 상의 갈리아 부족들  북쪽부터 경로를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아래 지도 4에는 색이 다른 점선으로 표시.
구글 지도
  1. 피콜로 산 베르나르도(프랑스어로는 프티 생 베르나르 Petit Saint Bernard)
  2. 몽 스니(Mont Cenis)
  3. 클라피에-사빈 코슈(Clapier-Savine coche; 클라피에로 줄여 적었습니다)
  4. 몽즈네브르(Montgenevre)
  5. 트라베르제트(Traversette)

  다음의 큰 단서는 폴리비오스 50절 맨 처음의 아래 문장입니다. 행군 속도를 어림할 때 이미 나오기도 했죠.

이세르 강둑을 따라 800 스타디아(≒148km) 거리를 열흘 동안 행군한 후, 한니발은 알프스의 등반을 시작했고, 매우 큰 어려움에 처했음을 알았다. 

  강을 따라 150km 가량 행군한 후 산골짜기로 들어갔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이세르 강과 드롬 강의 합류점에서 산골짜기가 되기 전까지 상류로 가야 하는 거리를 지형도로 확인해 봅시다.

▼ 지도 5. 두 강의 합류점부터 토리노(Torino)까지 이어지는 경로의 지형
구글 지도; 합류점에서 고갯마루까지 가는 경로의 지형
  • 이제르 강; 합류점에서 부르뇌프(Bourgneuf)까지 155km, 고도 차이는 약 220m. 그 후 클라피에 고개까지 92km고 고도 차이 2181m.
  • 드롬 강; 합류점에서 골짜기 입구까지 약 75km. 여기서 트라베르제트까지 약 180km며 고도 차이는 약 2800m.

  후자가 분명하지 않아 보일 수 있으니 확대 지형도를 추가해 보겠습니다.

▼ 지도 6. 드롬 강의 합류점부터 산으로 들어가는 경로의 지형
구글 지도
  아무리 길게 잡아도 약 75km 지점 이후는 산골짜기로 들어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 스타디아가 148km 정도니,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드롬 강 쪽 경로가 가능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 더; 드롬 강 유역은 지도 4에서 보듯이 알로브로게스 족의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제르 강을 따라 올라가다 산으로 들어갔으면, 경로는 주요 후보들 중 몽 스니와 클라피에 고개를 지나는 길만 남습니다.

▼ 지도 7. 지도 6의 북쪽 경로; 클라피에 고개 중심 몇 개의 도로
구글 지도
  제일 서쪽 지점을 찍으면, 타보르 산(Mont Thabor) 옆의 회색 길을 자동으로 선택해 줍니다. 조금 동쪽엔 흰색 자동차 도로가 보이고, 파랗게 선택한 경로가 클라피에 고갯길입니다. 최고점은 2564m죠.  왜 회색 길이 자동 선택인지는 명백한데, 최고 고도는 2782m로 더 높긴 하나 내려가는 길이 협곡을 통하기 때문에 비교적 덜 위험합니다. 반면에 클라피에 길은 이리저리 꺾여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리막 경사가 매우 급합니다. 위 지도에서 음영이 짙은 곳은 경사가 심한데, 이 부근 사면들은 ㅎㅎ
  자동차 도로 기점보다 더 동쪽으로 가면, 클라피에 길 외에도 두 길이 더 있습니다. 좀 일찍 갈라지면 북쪽의 스니 계곡(Val Cenis)을 선택한 후 몽 스니 호수 쪽으로 빠지는 길이 큰 몽 스니 고개(Col du Grand Mont Cenis)입니다. 고도는 2000m. 반면 작은 몽 스니 고개(Col du Petit Mont Cenis)는 클라피에 쪽으로 가다가 도중에 빠지는 길이고 고도는 2179m입니다. 분홍색 점으로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하산길은 마찬가지로 경사 급한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길 상황을 보려면, 조금 동쪽으로 가면 로슈멜롱(이탈리아어로 Rocciamelone)이란 고도 3500m 산봉우리의 하산 루트 사진을 보면 됩니다. 아래 수사 계곡(Val di Susa)으로 내려가는 길의 사진을 보면

▼ 사진 1. 스니 계곡 하산길 부근의 로슈멜롱 산에서 내려다본 하산 경로
구글 지도; Rocciamelone 하산길 (사진; Claudia Bidone)
  이런 데에 눈 덮이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아찔한 것입니다.  

  이 세 경로 모두 오를 때보다 내릴 때 경사가 상당히 더 급하기 때문에, 폴리비우스가 암시만 한 리비우스 35절의 다음 설명을 기본적으로 모두 만족합니다. 물론 세부 확인은 직접 가 봐야겠지만 ㅎㅎ

알프스 산맥의 경사도가 이탈리아 쪽에서 일반적으로 더 가파르기 때문에,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보다 훨씬 더 어려움이 밝혀졌다. 

  그러면 이 셋의 경중을 더 확실히 가릴 기준이 있을까요?  네.  폴리비오스의 다음 구절들입니다.

  • 53절; 아흐레 동안 산을 오른 후에 한니발은 정상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이틀 동안 생존자들에게 휴식을 주고 낙오자를 기다려 야영했다. 
  • 54절; 원기를 북돋우려, 그는 병사들을 집합시켜 산맥 아래에 실제 가까운 이탈리아의 광경을 보게 했다. 알프스 산과 이탈리아를 함께 볼 때, 성채가 도시에 접해 있듯이 알프스가 이탈리아 전체에 면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포 평원을 보여주고 거주하는 갈리아인들의 우호적인 감정 및 로마의 상황을 지적하면서, 그는 병사들의 의지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 55절; 이전 겨울부터 남아 있던 오래된 눈 위에 내린 새로운 눈은 부드럽고 신선했으며, 아직 깊지 않았다. 하지만 새 눈 위를 밟으면 아래에 있는 얼어붙은 눈을 만나 더 빠지지 않고 두 발로 미끄러졌다. 

  먼저, 정상에 (아마 프랑스 쪽에) 수 만의 군대가 숙영할 만한 경사가 낮은 지역이 있어야 하고, 정상에 올라가면 포 강 평원이 보여야 하며, 마지막으로 여름을 한 번 지나도 눈이 다 녹지 않을 정도로 추워야 합니다.

▼ 지도 8. 클라피에, 몽 스니 고개들의 조망과 고도
구글 지도
  위 지도를 보면, 수사 골짜기를 넘어 포 강 평원까지 보이는 것은 세 후보 중 클라피에 고개뿐입니다. 황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고도가 더 높기 때문에, 녹색에 위치한 몽 스니 고개들은 수사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어도 포 강 평원까지는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셋 중 독보적으로 고도가 높은 것은 클라피에기 때문에 한 해 전 내린 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상 부근에 야영지가 될 만한 넓은 곳이 있을까요?  역시 구글 지도의 확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지도 9. 작은 몽 스니 고개; 상세도
구글 지도
  고개 정점에서 1.0km의 원을 그리고, 보라색 사각형은 비교 대상인 공화정 시기 로마 2개 군단(2만 명을 상회)의 숙영지 크기(600 X 800m)입니다. 적어도 이 사각형보다는 좀 큰 데가 있어야 3만 명 이상과 코끼리를 포함한 대군이 잘 수 있겠지요.
  작은 몽 스니 고개는 고개를 넘기 전에는 좁지만, 넘은 다음에는 부근에 경사가 완만한 곳이 꽤 넓습니다. 아마도 넘기 직전에 숙영지와 있었을 것이니, 정 반대.

▼ 지도 10. 큰 몽 스니 고개; 상세도
구글 지도
큰 몽 스니 고개는 넘기 직전과 직후를 다 합하면 어찌저찌 전부 다 숙영할 수는 있을 듯한데 아주 넉넉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일단 호반으로 온 다음에는 평지가 아주 좁으니 숙영에 쓰긴 어렵겠지요.

▼ 지도 11. 클라피에 고개; 상세도
  공간은 이쪽 세 고개 중 가장 넓어 보입니다. 고개 넘기 전에도 사빈 호수 앞뒤에 넓직하고, 넘은 뒤에도 바로 가까이에 있네요.  실제 구글에서 몇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진 2. 클라피에 고개; 사빈 호수 한쪽의 평지. 여름인데 잔설이 군데군데 있다.
구글 지도; 사진 Pascal Olier(2019년 8월)
▼ 사진 3. 클라피에 고개; 전망이 멀리까지 트이지는 않았으나 계곡 아래가 바로 잘 보인다.
구글 지도; 사진 Pascal Olier(2019년 8월)
사진으로 보면,  클라피에 고개는 여름인데도 잔설이 보일 정도로 높고, 사빈 호수 주변의 평지가 상당히 넓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셋 중에는 클라피에가 세 조건 모두를 가장 잘 만족합니다.  (타보르 산 경로는 고대에는 안 쓰였기 때문인지 아무도 후보로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리막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인다는 점도 있죠)

  드롬 강을 따라가는 경로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지만, 일단 검토를 해 보면 후보로 많이 거론되는 것은 트라제르베트 고개입니다.

▼ 지도 12. 트라제르베트 고개; 전망
구글 지도
  트라제르베트는 2970m 부근으로 후보로 오른 고개 중 독보적으로 가장 높고, 위 지도 12에서 보듯이 내려가는 길도 경사가 급해 보입니다. 그리고 포 강 평원도 내려다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도 13처럼 정상 부근에 숙영할 만한 넓은 곳이 잘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올라왔던 프랑스 쪽이나, 내려갈 이탈리아 쪽 모두 경사가 낮은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북쪽으로 가면 좀 완만한 사면이 보이는데 거기도 면적이 그리 넓지 않죠.

▼ 지도 13. 트라제르베트 고개; 진영지
구글 지도
  솔직히 여기서 내려가려 하면 정말 길이 안 보입니다. 고개 마루 오른편 사면이 경사가 너무 급해 아예 검게 칠해져 있는 듯하네요.  내려가기가 어려운 건 좋은데 이렇게 험해서야 ㅎㅎ

  몽즈네브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데, 우선 고도가 1854m로 너무 낮고, 하산 경로가 비교적 길어서 클라피에보다 수월해 보입니다. 그리고 포 강 평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프랑스) 쪽에 넓은 캠핑장이 있는 것을 보면 숙영지가 모자라진 않지만 그거 하나로는 좀....

▼ 지도 14. 몽즈네브르 고개; 전망. 점선으로 친 부분은 고갯마루보다 고도가 높기 때문에, 포 강 평원을 볼 수가 없음
구글 지도
  구글에서 여름에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는데, 경로상에 눈이 없죠. 고도를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 사진 4. 몽즈네브르 고개; 경로에 눈이 보이지 않음
구글; Sur les routes Dans les airs
  제가 가장 북쪽 길인 피콜로 산 베르나르도를 아예 고려하지 않았는데, 거기는 너무 북쪽이고 방향상 포 평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덧붙입니다.

  이 정도 단서만으로도 유력 후보들 중 클라피에 고개가 1차 사료들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부로 가면 증거가 더 많은데...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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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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