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엔 ‘희열’, 일제에겐 ‘공포’ 전달한 한국 영화계의 성난 얼굴 - 나운규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4/15
일제에겐 공포를, 조선에겐 희열을 선사한 영화 <아리랑>의 '광인의 낫질' 씬. 출처-한국영상자료원
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羅雲奎, 1902~1937)
   
비밀한 사람
   
싸울 때 가장 두려운 상대는 누구일까. 목이 얼굴보다 두껍거나, 주먹이 솥뚜껑 만하며, ‘만두귀’를 가진 사람을 조심하면 된다. 이런 사람과 시비가 붙는다면 싸우려하지 말고 도망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있다. 바로 미친 사람이다. 칼을 꺼낼지 낫을 들지 모르는 사람. 어떤 적의를 품었는지 알 수 없는 비밀한 사람. 인생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선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면서도 한없이 침착한 존재. 이런 상대를 만난다면 얼마나 큰 공포를 느낄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나운규(羅雲奎, 1902~1937)의 영화 <아리랑>을 보고 바로 이런 서늘한 감정을 느꼈다. <아리랑>은 직접적으로 독립을 주장하거나 일제를 배격하는 정치적 구호가 드러나지 않아 상영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 없었지만, 나운규의 영화를 보는 일본인과 조선인 관객 모두는 알고 있었다. 나운규가 직접 감독하고 연기한 주인공 ‘영식’의 알 수 없는 표정과 미친 사람 같은 눈빛 속에 어떤 감정과 마음이 숨겨 있는지 말이다. 
 
한국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출처-한국영상자료원
 
드라마틱한 소년 청년 시절
   
나운규는 춘사(春史)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는 식민지 시기의 영화인이다. 그는 ‘한국영화의 개척자’이자, ‘민족영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0년부터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춘사영화제가 매년 4월 개최되고 있다. 영화감독인협회에서 직접 주관하는 시상식인 만큼 영화인들 사이에서 다른 상업적인 영화상보다 더 큰 영예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나운규의 생애는 그가 만든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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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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