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도시로 읽는 조선] 고려의 개성, 조선의 한양 그리고 슬픈 경성
2024/03/21
조선은 좋은 나라였을까? 의견이 분분하다. 일제강점기는 어땠을까? 한국인 대다수가 일제 시대를 암흑기로 아는 반면 축복의 시대로 보는 이들도 있다. 누구 말이 옳은가? 알지 못하면 선동당하고, 조금만 알면 괴이한 주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세상 작동 방식은 원래 그러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남의 영역’ 안에서는 조금밖에 알지 못하면서 다양한 주장을 내놓거나 찬반하는 식으로 합의 과정에 참여한다. 멀리서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큰 수의 법칙은 무시할 수 없다. 세상은 그렇게 발전해 왔다. 우리의 역사관 역시 그런 식으로 진화하는 게 아닐까?
‘조선사’와 같은 거시사로는 조선 시대를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없다. 이 한계를 사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 역사책의 중요성과 필요성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거시사에선 지면의 한계 탓으로, 과장 보태 선조가 나쁘고 이순신은 좋다 정도 수준의 서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더 복잡하다. 선조가 나쁘다는 식의 역사 지식이 현재의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탐관오리가 나쁘다면서 탐관오리를 닮은 정치가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그 정치가들 역사 지식은 대한민국 평균 이상은 된다. 시험만을 위해 습득한 지식의 한계가 명확히 보이는 지점이다.
다양한 방면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다. 남을 이해하는 게 꼭 남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타인을 이해할 때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내면을 향한 사유의 깊이도 깊어진다. 다방면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는 이와 같다 할 수 있겠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쓴 <도시로 읽는 조선>은 시야를 한층 넓혀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소개할 만하다. 거시사와 미시사 중간쯤 자리하는 책이다. 한양, 개성, 전주, 변산, 제주, 평양,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