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엄마를!」, 다케다 다이준
2024/03/25
마지막으로, 이러한 육체의 개념은 욕설, 저주, 신에 걸고 하는 맹세의 기초가 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특히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그로테스크 문학 작품에 나타난 모든 언어, 문체, 이미지들의 구조를 직접 구성하며, 공개적으로 개진된 일종의 독특한 진리의 역동적 공식들이고, 그로테스크적, 르네상스적 리얼리즘의 <격하>와 <저속화>에 관련된 다른 모든 형식들과도 깊은 근친 관계(발생과 기능적인 측면에서)를 이룬다. 현대의 천박한 욕설과 저주의 말 속에서도 이러한 육체적 개념의 생기 잃은, 순전히 부정적인 유물들이 보존되고 있다. 러시아어로 trekhetazhnyi(3층의) (다양한 변이형 속에서)과 같은 욕설들과 <....로나 처박혀버려> 같은 표현들은 그로테스크한 방법을 통해 욕먹는 사람을 격하시킨다. 즉 절대적이고 지형학적인 육체의 하부로, 수태와 생식기관의 영역으로, 소멸과 새로운 탄생을 위한 육체의 무덤(혹은 육체의 지옥)으로 그를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욕설 속에는 적나라한 부정과 순수한 냉소주의와 모욕 말고는, 이러한 양면가치적이며 재생되는 의미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새로운 언어들의 의미와 가치 체계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 속에서 이러한 표현들은 완전히 고립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의 언젠가는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모욕만을 주는 어떤 낯선 언어의 파편들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이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어떤 매력(에로틱한 것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을 부정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위선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 안에는 옛날의 카니발적인 자유분방함과 카니발적인 진리에 대한 혼란스러운 기억이 잠들어 있다. 언어 속에서 그것이 지니고 있는 파괴할 수 없는 생명력과 같은 심오한 문제들은 아직도 올바르게 제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라블레의 시대에, 그의 소설의 성장기반이 되는 민중언어의 영역에서 욕설과 저주의 말들은 자신의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