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쓰기(1) : “우리는 왜 그토록 아픈 계절을 지난 후에야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05
출처 : Unsplash

만 11세~13세, 인간이 ‘형식적 조작기’에 이르면 두 얼굴을 갖는 일에 능숙해진다. 나라고 다를까. 빈한한 자존감을 자의식과잉으로 덮으려 했고,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10%의 나를 100%로 확장했던 때가 있었다. 매일 주어진 하루를 꽉꽉 채우며, 홀로 고통과 시름하던 어린 날, 나는 "항상 웃고 있어서 보기 좋다.", "밝고 재미있다."라는 말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곤 했다. 지나고 보니 얼룩덜룩한 상처뿐인데, 그 시절엔 알록달록한 일상이라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이제 최면에서 깨어나 아픔의 바다에 잠겨 익사할 뻔한 오랜 이야기 한 편을 꺼내볼까 한다. 나의 수치와 비겁, 눈물이 범벅 진 순간들을.


E의 본색 : 친절한 미소, 음침한 속내

새 학기, 새 아침이 밝았다. 초등학교생활의 마지막 1년이라는 설렘과 기대감은 ‘E’를 만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학기 초에는 보통 가나다라 순으로 자리가 배정된다. 나는 E와 가까운 자음의 성 씨라는 이유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때부터 교묘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E는 깡마른 체구에 얇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애였고, 속칭 ‘노는 무리’들과 어울려지냈다. 같은 반이라고 해도 나와 접점이 없었던 터라 엮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제발 E가 나에게 무관심하길 빌었다. 등교할 때마다 날 바라보는 E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늘 불길한 예감은 완벽하게 들어맞는지, E는 내 간절한 바람을 깨고 쉼 없이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뭐야?”, “어디서 살아?”, “형제는 몇이야?” 나는 E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묻는 말에 대답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꺼림칙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이만하면 그만하겠지?’ 하는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일까? 상상도 못한 E의 돌직구가 날아들었다. “부모님은 뭐 하셔?” 나는 잠시 우물쭈물 대다 “일하셔.”라고 답했다. E는 “아, 그럼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인, 천주교 신자, 그리고 그 무엇
142
팔로워 201
팔로잉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