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 좀비 관성 달마

빈틈 · 빈틈입니다. 어쩌면 비틈일지도.
2023/09/03
제목에서 보듯이 이 글은 뜬금없이 도약한다. 좋게 말하면 양자적 퀀텀점프가 있으니 어지러워 말라는 말이다. 나쁘게 말하면 정리안된 잡글이라는 말이고.

TV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대사가 있다. '나를 추앙하라.'  미정이 구씨에게 던진 말이다. 사람은 억지로라도 꽂히는게 있어야 겨우 살맛이 생겨난다. 어찌해야 꽂힐까. 자의든 타의든 추앙함의 방향성이 누적될 때다. 살맛을 잃고 무기력한 구씨에게 '추앙하라'는 살맛을 되찾게 해주는 유일한 처방전이다. 추앙할 것이 사라지거나 추앙할 동력이 바닥나면 우울증자가 된다.
 
   추앙으로 시작된 꽂힘은 나를 나로 지켜주는 압정역할을 한다. 우울증은 이런 압정이 없기에 나를 나로 고정시키지 못하고 나를 지켜내지 못한다. 물론 어떤것에 과도하게 꽂혀서 정작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마약을 한다거나 또는 극단적 신앙이나 이데올로기가 그렇다.

  추앙이나 꽂힘은 나를 욕망하는 나를 부른다. 나는 욕망이다<헤겔>. 나가 자신의 의미자체가 된다.  어떤 것을 추앙함으로 내가 추앙된다. 이렇게 추앙된 나는 어떤것을 추앙함이 엷어지고 사라지더라도 살아남으려 한다. 불을 피워 돌을 데워놨더니, 불이 꺼지더라도 돌이 한참동안은 뜨겁듯이 말이다. 이때 홀로 남는 나라고 하는것은 관성이다.  영화가 창조하는 좀비도 이러한 관성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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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게 별로 없네요 가끔 글쓰기를 하는데 노자 장자 조사선 화두 라캉 헤겔 들뢰즈 태극권 정좌 명상 등과 같은 명사를 남용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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