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6/12
읽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쓰는 기분’을 잊을 때는 아주 많았다. 나는 요즘 걷는 기분에 흠뻑 빠져서 ‘쓰는 기분’을 잊고 있다. 걷는 동안에는 많은 것들이 저절로 비워진다. 나는 그 비워짐이 좋다. 아주 좋다. 그 비워짐이 채워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걸음들만큼 뚜렷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비워짐과 채워짐 사이에는 시간의 여력이 존재한다. 내가 미처 몰랐던 어떤 힘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바꿔야 한다. 완전히 탁해지기 전에. 종이의 색을 파랑에서 초록으로 바꿔야 하는 사람처럼 마법을 부려야 한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움직이는 장면의 합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오래 보면 책을 읽기 어렵다. 책은 움직이지 않는 장면(무대)에서 느리게 걸어다니는 언어를 좇아, 독자가 움직여야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움직이느냐, 네가 움직이느냐. 이 차이가 크다. 시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p.128)
조바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렇게 뚫어져라 앉아 있는 이유다. 나는 입을 앙다물고 집을 나서고 길의 여정 곳곳에 무언가를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설 때와 돌아왔을 때의 낙차를 느낀다. 거기에서 어떤 에너지가 생겼다고 여기지만 그 실체를 아직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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