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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뒤, 초등학생의 그림 일기

초등학생들과 책 읽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아요. 작년에 한번은 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과 환경 관련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했어요. 책 속에 100년 뒤 후손들이 선조들에게 쓰는 편지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100년이 흘렀다고 가정해보고, 그림 일기를 한번 그려보자! 하는 독후 활동이었어요.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초등학생 친구들은 기후위기에 대해 저보다 더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기후위기 세대'의 심정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물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 세대가 된 것 같지만요...)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미래의 그림 일기장에는 날씨 칸이 필요 없다
위에 있는 날씨 칸은 나에게 쓸모가 없다. 어차피 날씨는 100년, 아니 1000년이 되도 계속 모래바람이 불 것이다. 나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다. 지구온난화가 발생해 기후변화가 엄청 많이 일어나서 모든 건물이 쓰러지고 집도 모두 부서졌다. 심지어 온도가 너무 높아 녹은 빌딩도 있다. 나는 우주복을 입고 있어서 버티고 있다. -2120.06.09

이 친구는 100년이 흐르면 그림 일기장에 날씨 칸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적었어요. 1년 365일 내내 모래바람이 불게 될 것이라면서요. 제가 예상했던 독후 활동 결과물은, '미래에는 기후변화로 사람이 살기 힘든 날씨가 될 것이다' 이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이 친구는 정말 '자기 일'처럼 느끼면서 글을 썼더라고요. 이 친구의 일기를 읽고 나니, '기후위기에 대해 난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아닐까?'하는 반성도 됐습니다.

미래의 체육 시간에는 앉아있는 친구들이 더 많을지도...
체육 시간이 왔다. 체육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다. 오늘은 달리기를 했다. 내 친구들은 모두 신나게 달리기를 했지만, 나는 선생님께 몸이 아프다면서 구경만 했다. 나도 달리기를 하고 싶지만, 난 충분한 산소를 살 돈이 없으니. 달리기를 하면 숨이 차니까 산소를 낭비하게 된다. 그럴 수는 없어. 지구의 산소가 거의 다 없어졌으니... 내 조상들이 조금만 더 환경에 신경 썼다면 좋을텐데! - 2120.11.10 

이 친구는 미래에 산소를 돈 주고 구입해야 하니, 돈이 많지 않은 자신은 체육 시간에 앉아있기만 할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점은, 이 친구가 태권도를 정말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미래에는 체육이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될 거라고 말하다니... 그림 속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슬퍼하는 모습이 기후위기가 가중시킬 불평등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기후우울'이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된 것 같아요. 그 깊이도 얕지만은 않고요. 그런데 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보살펴야 할까요? 정말이지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기후위기를 가속시키고 있는 어른 중 한 명으로서, 이 그림 일기를 그린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기후위기와 관련한 제도, 수치 등등 중요해 보이는 현안들이 가득한 이 곳에서, 이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후 재난이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기후위기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또한 꼭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