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호 선생께 반론을 올린다 : 플라톤 철학을 회의주의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노경호 선생(이하 존칭생략)의 반론을 읽고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노경호는 자신의 논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플라톤을 회의주의적 전통과 결합시켜 이해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 플라톤이 마치 모든 의견과 결정을 유보해야 하는 '판단중지(에포케, epoché, epokhế, εποχη)'를 주장한 사람인양 둔갑시키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철학사적 맥락으로 보았을 때 '회의주의'라는 조류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 회의적 논변이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학술적 목표는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통해 지식 일반의 가능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을 회의주의자처럼 다루는 시도는 철학사에 대한 노경호의 이해를 재고하도록 한다. 오히려 회의주의자들이야말로 그러한 지식 일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체계적인 논변을 펼친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1. 체계적인 앎의 가능성을 부정한 회의주의

 키케로 이래 16세기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저작이 편집되기 전까지 회의주의란 곧 고대 아카데미아의 회의주의를 의미했다. 하지만 1562년 섹스투스의 저작이 현대적으로 편집된 이래 고대 회의주의는 아카데미아 회의주의가 아니라 '피론주의(Pyrrhonism)'을 의미하게 되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피론주의와 플라톤 철학 간의 관계는 대립적이다. 물론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플라톤 철학과 피론주의 철학을 병렬시키는 것 자체를 '불경'스러운 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피론은 30세 때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 인도 정복에 동참하여 고대 인도의 철학을 습득하여 되돌아왔던 사람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에 그리스 엘리스에 학교를 세우고 가르쳤지만 그의 저작은 남은 게 없다. 회의론의 기초를 만들었다고만 전달될 뿐 실제로 회의주의를 널리 퍼뜨린 사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과 동급으로 병렬시키는 것에 대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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