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호 선생께 반론을 올린다 : 플라톤 철학을 회의주의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2024/04/26
노경호 선생(이하 존칭생략)의 반론을 읽고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노경호는 자신의 논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플라톤을 회의주의적 전통과 결합시켜 이해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 플라톤이 마치 모든 의견과 결정을 유보해야 하는 '판단중지(에포케, epoché, epokhế, εποχη)'를 주장한 사람인양 둔갑시키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철학사적 맥락으로 보았을 때 '회의주의'라는 조류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 회의적 논변이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학술적 목표는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통해 지식 일반의 가능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을 회의주의자처럼 다루는 시도는 철학사에 대한 노경호의 이해를 재고하도록 한다. 오히려 회의주의자들이야말로 그러한 지식 일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체계적인 논변을 펼친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1. 체계적인 앎의 가능성을 부정한 회의주의
키케로 이래 16세기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저작이 편집되기 전까지 회의주의란 곧 고대 아카데미아의 회의주의를 의미했다. 하지만 1562년 섹스투스의 저작이 현대적으로 편집된 이래 고대 회의주의는 아카데미아 회의주의가 아니라 '피론주의(Pyrrhonism)'을 의미하게 되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피론주의와 플라톤 철학 간의 관계는 대립적이다. 물론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플라톤 철학과 피론주의 철학을 병렬시키는 것 자체를 '불경'스러운 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피론은 30세 때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 인도 정복에 동참하여 고대 인도의 철학을 습득하여 되돌아왔던 사람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에 그리스 엘리스에 학교를 세우고 가르쳤지만 그의 저작은 남은 게 없다. 회의론의 기초를 만들었다고만 전달될 뿐 실제로 회의주의를 널리 퍼뜨린 사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과 동급으로 병렬시키는 것에 대한 반...
논거 1), 2) 에 관해선 논리적으로 탄탄하며 설득력이 있는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성에 대한 성리학적 엄숙주의적 가치관을 적지 않게 반영한 자유주의죠. 만약 일본에서도 과거 조선처럼 성리학적 가치관이 사회 저변까지 뿌리내릴만큼 충분히 장기간 지배이념으로 군림했었다면 AV산업이나 성산업에 대해 지금의 한국만큼 엄숙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사회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논거 3)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우선 성적 대상화란 게 결국은 성적 매력 및 (넓은 의미에서의) 성적 서비스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건데 이와 같이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서 보는 건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통해 진화를 해가며 생식활동를 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입니다. 인간의 성적 대상화가 뿌리채 전면적으로 배제된다면 연애 및 섹스라는 번식활동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은 자연계의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점에서는 침팬지나 보노보 등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거든요.
그래서 성적 대상화는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며 사물화하는 것이므로 어떤 경우에서든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주장은 인간임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현실성•실천성 제로의 극단론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AV배우들의 자유에 대해서도 AV 페스티벌 개최가 그 사람들의 자유를 오히려 제한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인간 여자가 상대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간 남자(들)로부터 다른 재화(물적 재화뿐만 아니라 관심, 애정, 관계유지 및 집청소, 육아
참여 등의 무형의 재화)를 그 대가로 취하려 하고 실제로 취하는 행태 역시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AV 페스티벌과 관련해 AV 배우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있다면 그건 행사 개최가 아니라 오히려 행사 개최를 막는 거죠.
물론 여기서 전 '이러 저러한 것들은 본래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므로 규제 및 억압할 게 아니라 전면 긍정해야한다'는,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공격성, 폭력성을 포함해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들 중에는 사회가 그 본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규제•억압해야 할 것이 어마무지하게 많거든요.
제가 얘기하려는 건, 인간은 어떤 경우에서든 (성적 대상화를 포함해) 수단으로 취급받으며 사물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식의 어떤 원리적 도덕관에 기초해 이로부터 결론을 논리적으로 연역하는 방식으로 AV 페스티벌의 가부를 판단하려는 접근은 그 역할 및 의미가 매우 제한적인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