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3/25
미국에 간다는 말에 미음님이 말했다. 
언니, 인종 차별 당해도 싸우지 마요. 거기선 재수 없음 총 맞아요. 

이런. 솔뫼한테도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지만 무례한 사람도 있어. 웬만하면 그런가 보다 해.

어라? 나 싸움쟁이였나?
아니. 그럴 리가.
어디서 큰소리만 나도 온몸이 쪼그라드는 세상 겁보쫄보인 걸. 평생 친구랑 다퉈본 것도 두어 번이나 될까? 인종 차별이야 하는 인간들이 문제지. 말도 안 통할 사람들이랑 싸워 뭐 해. 

솔뫼가 미국 입국 심사대가 유난해서 혹시나, 하고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한번 안 가본 나도 미국 입국 심사대 에피소드를 적잖이 들었다. 그래,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입국 심사라는 일 자체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으니까.

알았어. 안 싸울게. 걱정하지 마.

나는 웃으며 솔뫼를 안심시키고는 힘차게 입국 심사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5분쯤 후 나는 입국 심사관과 싸우고 있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딱히 예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뻔한 질문들에 뻔한 답변을 했다.

여긴 왜 왔어? 
친구 만나러.

돌아가는 비행기 표 있어?
그럼. 

여기에 왜 90일이나 있어?
친구랑 실컷 놀고 싶어서. 제일 친한 친구야.

90일 동안 뭐 할 건데?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 먹을 거야.
(이때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상태.)

90일 동안이나? 친구는 뭐 하는데?
친구는 출근하지. 친구는 일해. 직장인이야.

친구가 출근하는데 너는 여기서 놀기만 한다고? 90일 동안이나?
(날카로워지는 눈초리에 질문의 본질을 깨달았다.)
아아, 내가 글 쓰는 사람이거든. 나는 쓰던 글 마저 작업할 거야. 
환기도 하고 충전도 하면서. 
그리고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이곳에 관한 산문도 쓰려고 해. 

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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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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