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로 알아보는 정통 복수 장르의 공식

전혜정
전혜정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2023/03/21
법치국가라면 사적구제는 안 된다는 점,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일을 당했어도, 제도에 호소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설령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겼다고 해도, 내가 그 어떤 고통을 당했다고 해도, 스스로 복수에 나서서는 안 됩니다. 법을 대리하지 않는 나만의 정의 구현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억울한 일을 당해본 사람은 아실 테죠. 법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 억울함이란 게 있다는 걸요. 우린 누구나 억울함 앞에서 아무 손도 쓸 수 없었던 무력함을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해 봤기에, 시원한 복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 더 글로리는 '장르물'이다.
얼룩소의 첫 글은 복수물, 더 글로리로 해볼까 합니다. 오랜 만에 만나보는 뚜렷한 장르물입니다.
더 글로리, 넷플릭스
장르물이란 무협이나 판타지, SF, 로맨스처럼 뚜렷한 세계관이나 법칙을 가진 작품들을 말합니다. 즉, 어떤 공식이 있고, 그 공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에게 공식대로 제공하는 것이 기본인 문학이죠. 주방장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이 아닌, 엄연히 메뉴판이 있고, 그 메뉴를 보고 선택할 수 있으며, 메뉴를 보고 예측한 것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르물을 대중문학이라고 보기보다는, 보드 게임에 더 가깝다고 말하곤 합니다. 장르물에서의 저자와 독자의 관계는, 룰을 아는 사람끼리 함께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와 비슷해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위에서 복수극인 더 글로리가 뚜렷한 장르물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는 것은 '복수물'이라는 이미 합의된 장르가 있고, 그에 따른 공식도 있다는 뜻이겠죠.

전제는 이렇습니다. 복수물이란 장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사적구제를 하는 이야기'이므로, 결론은 이미 '복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수물 속에서의 주인공은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기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술, 록음악, 책, AI 좋아하는 게으르머 미드저니 깎는 걸 좋아함
1
팔로워 35
팔로잉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