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1. 예능 작가지만 대본 씁니다

김재희
김재희 · 방송작가
2024/04/09
직업이 방송작갑니다. 주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요, 하면 주로 두 가지 종류의 질문을 받는다. 첫 번째는 연예인 많이 보나요. 누구랑 친하세요? 밥이나 술 먹어보셨어요? 와 같은 것. 보통 이렇게 답한다. 일하면서 보긴하지만 회사의 대리나 부장님 같은 거에요. 일 끝나면 따로 연락 안해도 이상하지 않고, 다시보면 또 반가운 사이. 가끔 친한 사람도 있지만 모두는 아닌. 밥먹는 것도 직장 회식과 비슷하고요. 
두 번째는 대본에 대한 질문이다. 근데 예능도 진짜 대본 있나요? 혹은 예능은 대본 없잖아요. 작가들은 뭐해요? 장소 섭외??? 여기부터는 말을 아끼게 된다. 당장 아침까지 대본 쓰느라 밤을 샜지만 가볍게 “당연히 있죠, 정해진 녹화 시간 안에 원하는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모든 순간이 우연처럼 일어날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지 않게 되는 것은 시청자 입장을 배려해서다. 산타를 믿는 아이에게 굳이 너의 아빠란다.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
과거에는 드라마도 예능도 대본이 있음이 디폴트였다. 코미디도 극화되어있었으니까. 하지만 리얼을 강조하는 예능으로 달라진 후에 시청자들이 바라는 바는 대본없음이다. 골때리는 출연자들과 무자비한 스탭들이 기막힌 우연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 리얼함을 해치면 진정성이 없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그건 편집과 대본에 대한 혐오로 드러난다. 현업 입장의 나는, 무작정 찍어서 덜 웃긴거보다는 대본이 필요한 곳은 주고 아닌 곳은 없애는 전략을 쓰고 그게 당연하다 믿지만 굳이 사람들의 환상을 깰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뭘 볼 때마다 저건 정해져있다거나 편집됐다는 느낌이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필요한 글을 씁니다
7
팔로워 17
팔로잉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