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부자(父子)의 삶에 묻어나는 한국 현대사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4/03/31
신동엽 부자(父子)의 삶에 묻어나는 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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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잘 모르지만 시 쓰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참 부럽다.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처음 읽으면서도 그랬다. 껍데기와 알멩이라는 흔한 단어가 이렇게 구별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뭔가를 상징하면서 단어의 생명력을 가질 수도 있구나. 이미 변질한 사람들 많았던 사월의 껍데기들을 버리고, 동학 농민 전쟁의 아우성도 그 알맹이만 챙기고자 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참 생생하고 쟁쟁하게 귀를 울렸다. 입으로 읽으면서도 귀에 울리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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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문재(文才)를 드러내 아버지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던 신동엽. 아버지는 없는 살림에 신동엽에게 글을 가르쳤고 책과 붓을 마련해 아들의 공부를 지원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여 사범학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의 인생은 그렇게 험난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한국 현대사였다. 그의 학창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 양쪽 모두에게 끌려가서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때도 “너 누구 편이야?” 하는 유행병이 번졌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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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 실시를 촉구하고 친일파 척결의 유야무야를 항의하는 동맹휴학에 끼어들었다가 신동엽은 덜커덕 퇴학을 맞는다. 그래도 교원 자격은 있어서 국민학교 교사가 되지만 바로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가 대학생이 된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 난데없는 포성과 총성을 접하게 된다. 6.25가 터진 것이다. 부랴부랴 고향 부여로 내려오지만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부여도 점령한다. 
인민군들은 그의 사범학교 경력과 인텔리로서의 지식을 높이 샀든지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든지 하여간 신동엽을 곱게 본 것 같다. 신동엽은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의 감투를 쓴다. “인민군의 뒤를 바싹 따라 북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들어와 신속한 조직사업을 전개했다. …각 군에도 북로당원들이 내려와 군당위원장이 되었다.... (그들이 조직한) 각종 동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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