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결말은 죽음이건만: 연극 <비Bea>
2024/02/27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이 법칙을 벗어난 인간은, 적어도 신화나 종교가 아닌 역사의 차원에서는, 없다. 이처럼 탄생-성장-죽음의 당연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생물의 한 종에 불과했던 인류는 언젠가부터 특수한 권리를 획득했다. 인권, 혹은 인격이라고도 불리는 이 권리는 아주 긴 시간에 걸쳐 힘겹게 차지한 인류의 포획물일 텐데, 하물며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는 겸손을 덧붙이기도 했으니, 인간의 권리는 어떻게든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이렇게 얻은 권리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채로 불평등하지만.) 그렇다면 인간의 권리는 언제 주어지고, 완성되는가.
인간의 권리가 주어지는 시기에 대한 고민이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라면, 인간의 권리가 완성되는 시기에 대한 고민이 ‘안락사’ 논쟁일 테다. 정치적 논쟁이나 사회적 논의로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오래된 명제에 뛰어들 때, 인류는 문화와 예술의 힘을 자주 빌린다. 수많은 예술의 방식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단연 이야기일 텐데, 그중 어떤 이야기는 작은 무대와 몇몇 인물의 힘을 빌려 그 논쟁 중 하나에 아름다운 주석을 하나 달아놓는다.
연극 <비Bea>를 본다.
죽음의 권리
침대 하나가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우면 가득 찰 만큼 평범한 크기의 침대이지만, 그 침대는 사실상 누군가의 세상 전부다. 스무 살 무렵부터 원인을 모르는 만성 체력 저하 증상을 앓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비어트리스, 비Bea(이지혜)의 세상이다. 그녀의 엄마 캐서린(강명주)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간병인 레이(김세환)를 고용한다. 엄마와 자신 둘 뿐이던 세상에 레이가 들어오면서 벌어진 틈새를 통해 비는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다른 세상을 목격한 비는 더는 좁은 지금의 세상 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테다. 그녀는 레이에게 부탁한다. ‘엄마에게 줄 편지를 대신 적어줘.’
비는 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