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사이의 현명한 정치가 '자산'
2024/01/19
춘추시대 중원의 한복판에 정鄭나라가 있었다. 북으로는 진晉이라는 강대국이 남南으로는 초楚라는 강대국이 있어서 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나라였다.
진이 쳐들어오면 진에게 항복하고, 초가 쳐들어오면 초에 항복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정나라가 무작정 약한 나라는 아니어서 채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한 적이 있었다. 모두들 기뻐하는 가운데, 자산이라는 어린이만이 걱정을 했다.
"채나라는 초나라와 가까운데, 이제 초나라가 쳐들어오면 항복해야 하고, 초나라에 항복하면 진나라가 쳐들어올 것이니 향후 몇 년은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외환을 겪는 와중에 내란도 심했다. 군주가 신하들에 의해 뒤바뀌고 반란에 재상들이 몰살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때 죽은 재상의 아들 중 하나였던 자산이 침착하게 병력을 모으고 반격에 나서 반란을 진압했다.
십여년 후 자산은 정치 일선에 등장했다. 그는 진晉나라 재상이 요구하는 과한 재물을 점잖은 외교 언사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다음해 자산은 남쪽에 있는 진陳나라를 공격했다. 자산은 일거에 진나라의 수도를 짓밟았다.
하지만 이 공격은 패자인 진晉나라의 승인이 없는 단독행동이었다. 자산은 승전의 전리품을 진晉나라에 바치고 초나라와 동맹인 진陳나라를 손본 것이라고 변명했다. 진晉나라는 흡족해 했다.
이 무렵 진晉과 초는 휴전 조약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미병회맹이라고 부른다. 이후 진-초는 40여년간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 사이에 진나라에 는 삼진(한·위·조=나중에 각기 나라로 독립하는데, 그것을 춘추와 전국시대를 나누는 사건으로 본다)이 성장하게 된다.
이때 정나라에서는 또다시 내란이 일어났다. 일족들의 싸움에서 자산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예를 다했다. 그는 신망을 얻었고 드디어 정나라의 전권을 잡게 되었다.
자산은 전면적인 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