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기 연재> 마지막 회- 나를 지키는 삶을 위해

유창선
유창선 인증된 계정 · 칼럼니스트
2023/12/02

 자신의 얼굴을 지키는 삶을 산다는 것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 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개성에 따른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이다. 내 경우는 젊은 시절 이래로 오랜 세월 정치적 진영이라는 집단에 갇혀 살아왔기에 언제나 개인보다는 집단의 도덕이나 문화를 의식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가 집단의 도덕과 어긋날 때는 그 욕구를 죄악시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나니 회한이 든다. 그것이 그럴 일이었을까, 인간의 본성적 욕구들을 집단적 규율 아래 숨기고 억압하던 삶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이제는 까마득한 그 시절,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인의 욕망은 통제 받고 억압되어야 할 무엇이었다.

하지만 정반대 편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집단적 사고가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가치가 전부인 것처럼 받들어졌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의 인간형만을 미덕으로 찬미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런 하나의 인간이 될 것을 권장하곤 했다. 사람에 대한 획일적인 요구는 획일적인 응답을 낳곤 한다.
pexels

삶에는 정답이란게 없다

그러나 삶의 가치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어떤 인간형이 좋은 것인가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 있기 어렵고, 서로 존중해야 할 다름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기준만이 절대시 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갖는 생각도 개성을 잃은 채 하나의 것으로 닮아가 버린다. 나만의 색깔이 없어지고 모두가 같은 색깔로 동질화 되고 만다. 생각해보면 그것처럼 무미건조한 삶도 없다. 그래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고 미리부터 갖고 있던 관념과 어긋나는 건 좋은 일이죠. 하나의 유형에 속한다는 것은 그 인간의 종말이자 선고를 의미하니까.” 

과연 나는 나의 생각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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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시사평론을 했습니다. 뇌종양 수술을 하고 긴 투병의 시간을 거친 이후로 인생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문화예술과 인생에 대한 글쓰기도 많이 합니다. 서울신문, 아시아경제,아주경제,시사저널,주간한국, 여성신문,신동아,폴리뉴스에 칼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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