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 20세기를 열다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3/02
The Great War
19세기 후반, 유럽에는 낙관과 희망이 가득했다. 우선 보불전쟁(1870-1871)이 끝난 후, 4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유럽의 주요국가가 격돌하는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러일전쟁이 발발했으나 러시아와 영국이 직접 맞붙은 것이 아니라 일본이 영국을 대리한 전쟁이며 전장도 아시아의 먼 동쪽이라 큰 주의를 끌지 못했다.) 이런 유례없는 평화와 정치적 안정은 프로이센의 정치가 비스마르크에 크게 의존했다. 프로이센 왕가를 최우선하는 군국주의자였으나 동시에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노령연금 같은 복지제도를 확충하여 노동자의 삶을 개선한 실용주의자인 비스마르크는 '모두가 우호관계에 있는 이상주의적인 평화' 대신 노련한 외교술을 이용하여 유럽 주요국가가 잔뜩 무장한 상태에서 '힘의 균형'을 이룬 '현실적인 평화'를 이끌었다. 그런 안정과 평화를 바탕으로 과학이 크게 발전하여 산업이 번성하고 생활수준이 상승하니 유럽인,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서는 '아름다운 미래'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에 접어든 후에도 그런 낙관과 희망은 이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참혹한 전쟁이 인류에게 다가와 모든 희망과 낙관을 산산히 깨뜨렸다. 바로 1차 대전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계승자인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과 함께 비스마르크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무장 평화'는 산산히 부서졌다. 동맹과 동맹으로 복잡하게 얽힌 유럽의 주요국가는 서로 선전포고를 주고 받으며 순식간에거대한 전쟁에 휘말렸다. 다만 처음에는 누구도 전쟁이 수 년 동안 지속할 것이며 수 천만의 인명이 희생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몇 달 동안 지속할 것이며 몇 번의 중요한 전투를 벌이면 승리와 패배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은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미국까지 전쟁...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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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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