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 인쇄가 필사보다 빨랐을까?

badacopy
badacopy · 작가, 강사
2024/02/26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에 발명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그런데 한국의 한 유명한 서지학자는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를 부정했다. 이번 회에는 그 의심을 실마리 삼아 금속활자의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 
   
정말 고려시대에 ‘금속’활자가 있었던 것일까? 
앞에서 ≪고금상정예문≫이 금속활자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좀 의심스러운 데가 있다. 어쩌면 목활자본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심은 서지학자 안춘근에 의해 제기되었다. 

≪고금상정예문≫이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12월 19일자 <동아일보>에서도 그 내용이 발견된다. 진단학회를 창립했던 이윤재李允宰가 쓴 글인데 그는 이규보가 남긴 글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규보가 쓴 ≪고금상정예문≫의 발문을 보면 “주자鑄字를 이용해 28질을 인쇄해서 각 부서에 나누어주고 갈무리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주자’가 금속활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지학자인 안춘근은 ‘주자’를 꼭 ‘금속’활자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되었을 때 감정을 요청받을 만큼 학계에서 인정받는 서지학자였다. 그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문헌의 용례를 들어 설명하는 그의 논리는 매우 견고해 보인다.

그의 논리에 공감하게 된 이유는 나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후기에는 잦은 외침과 내란으로 대부분의 책과 책을 인쇄할 수 있는 목판이 불타버렸다. 그래도 그 당시에 인쇄된 책들의 목록은 대충 수습되어 있다. 

그 목록에서 찾을 수 있는 금속활자본은 겨우 3종뿐이다. 위에서 말한 ≪고금상정예문≫과 ≪직지심체요절≫,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가 그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목판본이다. 이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무엇보다 금속활자는 여러 종류의 책을 빨리 인쇄하는 데 쓰이는 기술이었다. 그러니 금속활자본이 3종밖에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조선시대의 경우 한 종류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의 종수는 평균 50종이 넘는다. 게다가 금속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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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저작물의 저자 :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2022), ≪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2014년, 2022년 개정판), ≪위반하는 글쓰기≫(2020),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2018, 2022년 드라마(한석규/김서형 주연), 그 외 베스트셀러 ≪인문학으로 광고하다≫(2007, 박웅현과 공저)가 있고, 이어령과 공저한 ≪유쾌한 창조≫(2010), 문국진과 공저한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2011), 한무영과 공저인 ≪빗물과 당신≫(201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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