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우는 법을 잊은 나에게> :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의 구명조끼 에세이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31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나는 대체로 무기력하고,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날을 새고, 잦은 불안에 시달린다. 반면에 상대방의 뇌에 입력된 나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항상 씩씩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고, 난관을 유연하게 잘 넘어가고, 칠전팔기 정신으로 될 때까지 도전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내가 늘 안간힘을 다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너무 쉽게 부러움에 가득 찬 말들을 쏟아내곤 한다. "승아 씨 같은 사람은 절대 상처 안 받겠어요." 이럴 때면 나는 뒤로 내빼지 않고 당당하게 응수한다. "선생님,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순도 100%의 사실을 내뱉었을 뿐인데, 상대방은 잠시 당황해서 머뭇거린다. 그러면 또 한 번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내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한다. "상처를 많이 받다 보니 내성이 생겼어요. 상처에 대처하는 능력도 그만큼 향상되었고요. 딱 거기까지예요.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어요." 혹자는 뭐 하러 속내를 다 털어놓느냐고 난색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날 억지로 괜찮은 척하다가 삶과 관계가 다 뭉개져버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괜찮지 않은 걸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가 정말 중요하다.

나는 만 10세~15세까지만 해도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고 우울증을 부정하는 것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지냈다. (심지어 당시에는 내가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 아닐까 고민했으며, 질병을 의지의 문제로 잘못 진단하여 병을 키웠다.)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감정 조절에 매번 실패했다. 괜찮아 보이려고 안달할수록 삶은 고립되어 갔다. 이토록 불건강한 시절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것으로는 내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없음을,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을 온전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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