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쓸모없는 OO공부를 하는 이유

박혜윤
박혜윤 인증된 계정 · 글쓰는 사람
2024/03/25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 저자 박혜윤 (사진 : 본인 제공)
박혜윤 작가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뒤,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가버린 언니를 그리워하는 중학생 둘째와 남편과 함께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산다. 한국의 입시를 신봉한 덕에 수능 영어, 토플 등은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으나 미국에 가서 시험 바깥의 영어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영어가 어려웠던 적도 영어 때문에 곤란했던 적도 없다.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은 박혜윤 작가의 다섯 번째 책이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작가는 '지금도 영어가 두려운 당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부제 아래, 평생 영어공부를 하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른의 외국어 공부는 달라야 한다"며 인식의 전환을 제안한다.

<얼룩소>에서 박혜윤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 주인이 되는 목적으로서의 배움

책 제안을 받고 무척 신나셨다고요. 그간 집필한 책들과 어떻게 달랐나요?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 가장 짧은데도 불구하고 가장 오랜 시간, 가장 어렵게 썼어요. 원고를 80%를 쓰고 나서는 편집자에게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죠.(웃음) 처음에는 쉽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어를 배운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쓰면 되겠지 싶었던 거죠. 역시나 쓰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원고를 거의 완성하고서 보니까, 이게 나 혼자 신나서 내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책이 되려면 남들에게 내 글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는 이유가 (그 이유가 타당하건 아니건) 있어야 하는데, 영어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영어 공부를 홍보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학습서가 아니라, 글이니까요. 영어도 저자도 아닌, 독자 자신의 핵심에 닿을 수 있는 길을 다시 생각해야만 했어요. 그게 스스로의 배움을 삶으로 만드는 성인의 학습, 삶의 공부였고요.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쌓는 것, 주인이 되는 목적으로서의 배움 말이에요. 지식을 습득해서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써먹기 위한 게 아니라요. 그런 게 어른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남들의 인정에 기대지 않아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죠. 그런 수단으로 영어 공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책을 쓰는 목적은 하나라고 말하셨어요. '영어 공부해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방법적인 것들을 기대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마음가짐이 왜 중요할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쓸모없는 일로 꼽히는 게 외국어 공부죠. 실시간 통번역 기술은 곧 완벽에 이를 것이고, 게다가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원어민 못지않은 외국어 실력, 완벽한 수준을 목표로 하는 외국어 공부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전제하고 이 책을 썼어요. 정말 중요한 건 스스로 목표를 찾아내는 것이고, 그곳으로 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있는 과정이에요. 숙제나 의무처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시험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어른의 평생 외국어 공부는 독특한 방식으로 외로운 일이에요. 외국어 공부를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특수한 외로움이 있어요. 모국어를 배울 때처럼 주변 사람과 온 사회와 문화와 접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야처럼 어떤 체계적인 단계가 있어서 나 자신의 발전을 확인할 방법도 없어요. 문어체의 어려운 단어를 아는 것과 최신 구어체의 유행어를 아는 것, 어떤 게 더 높은 수준인지 판단할 수 없는 거죠. 외국어이기 때문에 영원히 낯섦을 감수해야 하고요. 외로운 게 왜 좋은 거냐고요? 연결의 시대, 효율성의 시대에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외로워지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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