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켜준 것

서은혜
2022/06/02
남자 여자가 내는 소리가 묘하게 섞여서 내 방 벽을 타고 들어왔다. 고등학교 2학년,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지만 규칙적인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대번에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쉰이 넘도록 혼자 살던 옆집 아저씨가 누군가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날이었다.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는 첫날밤을 치르는 신랑각시를 구경하려고 동네 사람들이 신방 앞에 몰려가 문풍지에 구멍을 뚫고 들떠서 웃음을 터뜨리던데. 나는 주먹으로 벽을 쳐서 두 사람이 더 이상 소리를 못 지르게 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결혼을 하기 전까지 엄마 아빠와 셋이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기다란 복도를 타고 열두 평짜리 집들이 층마다 여덟 채씩 붙어 있는 곳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꽤 그럴 듯했지만 집과 집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헐한 베니어합판이 고작이라서 옆집 사람이 내는 소리가 우리집 안에서 울리고는 했다. 

엄마 아빠가 자는 안방 너머에는 휠체어를 타는 서른 살 남짓한 아들과 아줌마가 살았다. 여느 때처럼 동네 아줌마 몇몇이 옆집에 몰려와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우리 엄마를 흉보는 소리까지 안방에서 생생하게 들은 적도 있다. 자기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건 다 몸이 어눌한 우리 엄마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는 굉장히 깔끔한 사람이라 바퀴벌레가 나올 리가 없다고 하면서. 

내 방 너머에는 머리를 길게 기르는 아저씨가 혼자 살았다. 키가 작고 빼빼하고 수줍음이 많은 옆집 아저씨는 말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벽에 뭘 걸다말고 바닥에 떨어드리든, 몸을 부딪치든, "툭"하는 그 별 것 아닌 소리가 베니어합판 사이를 퉁기며 내 방까지 왕왕왕왕 울리고는 했다.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다가도, 옆집 아저씨가 지척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서라운드 스피커에서 구현한 입체 사운드처럼 고막을 때릴 때면 몸 끝이 쭈뼛쭈뼛 굳어지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별안간 소리의 형태를 하고 내 방으로 침입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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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입니다. 틈나는 대로 사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eunhye.seo.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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