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그 시간이 되지 않았을 뿐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09/04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가 있었다. 어느 술자리에서 어떤 무인이 물었다.

"가장 어려운 상대가 누구였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고수는 잠시 침묵했다. 귀를 쫑긋 세운 사람들은 저마다 알고 있는 고수들을 떠올렸다. 천하오절일까? 육대정파일까? 사대세가일까? 사파의 괴걸인가, 마교의 호법인가, 전대의 고인인가.

하지만 고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뜻밖의 말이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이는 저자거리의 불한당이었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무인이 다시 물었다.

"저자 거리의 건달쯤이야 대인의 심오한 무공으로 가볍게 처리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자는 건달도 아니었소. 무공은 기초도 없어서 그저 남들 하는 걸 눈동냥질로 본 것에 불과했소."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 되는 놈이라면 저도 당장 팔모가지를 꺾어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고수는 혀를 찼다. 

"다만 그 자에게 남다른 점이 두가지 있었소. 하나는 수치를 모르는 뻔뻔함이고, 다른 하나는 아픔을 모르는 무신경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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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수가 설명해주었다.

"수치를 모르기 때문에 말로는 타이를 수가 없었소. 이치를 가지고 설명해주어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니 속수무책이 아닐 수 없었소. 아니, 어쩌면 알아듣는데도 못 알아듣는 척 했는지도 모르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
"한마디로 후안무치한 개망나니였군요. 점잖은 대인에게 그렇게 짖어대면 당황스럽기는 했겠습니다. 그럼 아픔을...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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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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