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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사랑한 진심, 왜 깎아내리나요?”

댓서 · 그렇게 됐습니다
2023/12/08
댓서 개인 블로그에 달린 댓글 출처: 댓서





넥슨 집게손 억지 논란 사태를 아시나요?
게임계에서 다시 남성혐오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11월 23일 공개된 넥슨의 <엔젤릭버스터> ‘Shining Heart’ 뮤직비디오에서 캐릭터가 집게손 모양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 집게손가락을 제가 그렸다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에 그려 넣은 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저를 협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SNS를 비롯해 블로그, 카카오톡 아이디, 이메일 주소까지 알아냈습니다. ‘한강에 드가셔야지’(한강에 빠져 죽어라) 등 위협하는 말을 뱉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 아닌데 모든 화살이 저를 향해 억울함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애니메이터’라는 일을 
사랑한 제 진심을 깎아내린 겁니다.”

우리 회사(스튜디오 뿌리)가 넥슨의 외주를 받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엔버)’ 홍보 영상을 제작하게 된 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저와 동료는 몇 달 전부터 애정을 쏟아 제작했고 결과물도 잘 나왔습니다. 분명 ‘X(구 트위터)’에서 제 작품을 좋아해 주는 이용자가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제작물을 올려 자랑했고, 예상대로 많은 이용자가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어떤 이용자가 제 게시물을 ‘리트윗’(공유)해 제가 남성을 혐오할 목적으로 ‘집게손가락’을 그렸다는 의혹을 던졌습니다. 게임이 공개되고 이틀 뒤인 11월 25일 밤 10시쯤이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제가 X에 3월에 올렸던 게시물이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남자 눈에 거슬리는 말 좀 했다고 SNS 계정 막혀서 몸 사리고 다닌 적은 있어도 페미 그만둔 적은 없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 줄게.”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황해서 대표님께 연락을 하니, '금방 지나갈 것이다'라며 저를 토닥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11월 26일, 넥슨은 발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일은 하루 만에 회사 차원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언론과 정치인이 앞다퉈 사태를 다뤘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욕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연락이 왔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젠더 갈등이라기보다는 일부 유저들의 ‘남성혐오’ 주장으로, 제대로 된 조사나 별다른 근거도 없이 여성 애니메이터와 스튜디오 뿌리가 상당히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안으로 봐야 해요. 일종의 사이버 공간 내 테러 행위지, 남성과 여성 간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자면, 
집게손가락은 애니메이터 입장에서 봤을 때, 완전히 ‘억지’ 주장입니다.”

애니메이터는 캐릭터가 멈춰 있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 우리는 우연히 최소 한 번 이상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 겁니다. 식사하려고 눈앞의 샌드위치에 손을 가져다 댈 때, 퇴근을 하려 가방에 짐을 넣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낼 때 등 자연스럽게 동작하는 순간 손가락 모양이 집게가 될 수도, 보자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애니메이터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을 만드는 사람이라서 수천 개의 프레임을 만듭니다. 그중 하나를 집요하게 캡처해서 의도적으로 애니메이터를 공격한 겁니다. 집게손가락 논란이 억지인 이유입니다.

회사 대표님은 저와 달리 회사 홈페이지에 실명이 공개되어 있고, 전화번호도 노출되어 있어서 저보다 더 많은 협박 전화를 받았을 겁니다. 저와 대표님 둘 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때가 사태 하루 뒤인 11월 26일이었는데, 이날 ‘PM 유저 협회’를 처음 만났습니다. 게임 업계의 사상 검증에 대한 비판 및 피해자와 연대 활동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후 이종찬 활동가, IT 노조 대표 등 활동가와 회사 대표님, 저까지 네 명이 만나 이 사태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여성민우회에서도 11월 28일 넥슨 본사 앞에서 현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그들의 연대로 계속 말할 힘과 글 쓸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살해 협박까지 받는 일이 더는 없도록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만이라도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혹여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처럼 목소리 내는 피해자들이 많아져서 업계를 옳은 방향으로 선도하면 좋겠습니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미래 동료를 위해서라도요. 벌써 서울 노동청이 게임 업계 근로자 보호 조치 특별 점검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게임 업계 사상검증 성인지 감수성 실태 조사 추진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이 상황에서 악성 이용자들은 넥슨 엔버 외에 다른 게임에서 집게손 억지 논란을 만드는 중입니다. 카카오게임, 타 스튜디오 게임에서 집게손을 찾아 신고한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업계를 넘어, 이런 악성 민원을 받은 기업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바랍니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보통의 이용자가 더 많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저 같은 창작자의 노동권이 억울하게 침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끝으로 우리 회사는 저와 함께 힘든 이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는데요, 고생하는 동료와 대표님, 총감독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2023년 12월 8일부터 12월 10일(일요일) 23시 59분까지, 댓서가 직접 답해 드립니다.
5명의 질문자를 선정해 얼룩소 포인트 1만 원을 드려요. (발표 = 매일 정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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