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밝은] 달에'(향가 처용가)의 '-에' 옛 표기
동경 밝은 달에
양주동, 1942.
양주동의 해석이다. 양주동은 시야가 넓고 박학다식한 학자였다. 강연에 인기인으로 부인이 비서처럼 따라 다니며 고액 강연료를 받아 보관해 둔다는 소문이 있었다. 대중 스타 학자1은 부인이 비서처럼 동행해 역시 강연료를 보관했다.
'동경(서라벌) 밝은 달에' 해석은 자연스럽다. '달에' 원문은 '월량月良'으로 되어 있다. 당시는 아직 한글 문자가 발명되기 전이라 한자를 빌어 표기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月良'만 보인다. '달 月'은 '달'로 연결되어 이해가 간다. '어질 양良'은 '-에'와 연결이 직접 안 된다. '良'의 독법이 무엇일까. 양주동(1942)은 '다래'(달에)로 읽었다. '良'이 '-애'를 표기한 것으로 보았다. 향가 연구 길을 개척한 오구라 신페이(1929)의 독법이기도 하다.
'동경(서라벌) 밝은 달에' 해석은 자연스럽다. '달에' 원문은 '월량月良'으로 되어 있다. 당시는 아직 한글 문자가 발명되기 전이라 한자를 빌어 표기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月良'만 보인다. '달 月'은 '달'로 연결되어 이해가 간다. '어질 양良'은 '-에'와 연결이 직접 안 된다. '良'의 독법이 무엇일까. 양주동(1942)은 '다래'(달에)로 읽었다. '良'이 '-애'를 표기한 것으로 보았다. 향가 연구 길을 개척한 오구라 신페이(1929)의 독법이기도 하다.
枝良[가지애], 手良[손애] 등.
김완진(1980)은 '애[良]' 대신에 '아[良]'를 제안했다.
김완진에 이르러 비로소 형태음소론적 고려가 반영된 것이다. [중략]
'의'계와 '아'계가 기원을 달리하는 처격형으로 파악하여 처격을 두 가지로 분류한 태도이다.
《향가와 만엽집가의 표기법 비교 연구》(이종철, 1983: 122).
'아[良]'가 계통이 다르다는 인식은 진일보했다.
경덕왕(景德王)이 양주(良州)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양주(梁州)이다.
《삼국사기》 권37.
'양梁'은 '도道'라고도 읽는다는 기록이 있다.
양(梁)을 또한 도(道)라고도 읽는다.
梁亦讀道
《삼국유사》 권1.
국어에는 시간 장소에 쓰이는 조사 '-도'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어에 'de', 다우르어에 '-d'가 보인다.
고대금석문에서 '中'이 같은 용법으로 쓰였다.
辛未年十一月中 신미년 11월에.
古他門中 고타문에서.
경주 명활성비(慶州 明活城碑)(551).
김재홍 판독.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DB.
고대 지명에서 '中'이 '도道'와 대응한다고 보이는 예가 있다.
도안현(道安縣)은 본래 도량현(刀良縣)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중모현(中牟縣)이다.
《삼국사기》 권34.
다우르어 dond 中. 中間. ...之中.
'동경(서라벌) 밝은 달에'의 '달에' 원문 '月良'에서 조사 '良'은 '-*도'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月良'은 금석문식으로 거슬러올라가면 '月中' (달에) 표기로 될 것이다.
'동경(서라벌) 밝은 달에'의 '달에' 원문 '月良'에서 조사 '良'은 '-*도'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月良'은 금석문식으로 거슬러올라가면 '月中' (달에) 표기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