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짓은 이제 그만! <더 글로리>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3/16
1.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숫자다. 일단 머릿수가 많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누어줄 창과 곤봉이 충분하고 적에게 날릴 물매가 많으며 활과 화살이 넉넉하면 당연히 유리하다. 아마도 이길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싸울 줄 아는 녀석들을 동원했을 때, 이야기다. 그게 아니면 머릿수가 많아도 의미가 없다. 창과 곤봉이 아니라 날카롭게 날을 세운 검과 튼튼한 방패를 나누어 주어도 싸우는 법을 모르면 별다른 의미가 없다. 싸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류, 기껏해야 무력한 버렁뱅이와 불쌍한 나그네를 두들겨 패고 살해한 것이 경험의 전부인 놈들은 진짜 싸움을 견디지 못한다. 

불쌍하고 무력한 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싸움이 아니다. 그런 경험은 진짜 싸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슷한 무기로 무장하고 기꺼이 나의 목숨을 빼앗겠노라며 기세좋게 덤비는 상대와 맞서는 것이 진짜 싸움이다. 그런 싸움에서는 조그마한 방심과 짧은 망설임도 무시무시한 결과를 만든다. 자칫하면 뼈가 부러지고 눈이 뽑히며 머리가 으스러진다. 고통에 울부짖어봤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적이 빨리 목숨을 끊어주면 그나마 행운이다. 고통 가운데 서서히 죽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늑대처럼 덤벼야한다. 몽둥이를 휘둘러 두개골을 부수어 뇌수를 흘려야한다. 창으로 몸통을 찔러 피가 섞인 내장이 쏟아지게 만들어야 하고 화살을 목에 박아넣에 신음조차 지르지 못하게 쓰러뜨려야 한다. 그럴려면 냄새를 견딜 수 있어야한다. 피비린내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인간이 쏟아내는 똥오줌의 큼큼한 악취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소리를 이겨야한다. 고함, 비명, 신음, 욕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창이 몸통을 꿰뚫며 만드는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 그 모든 끔찍한 합창을 이겨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촉감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피부에 닿는 피의 미적지근한 느낌, 피와 먼지가 엉겨붙은 무기를 움켜쥘 때, 손에 전해지는 그 느낌, 적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술 때의 둔탁한...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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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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