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2 - 내 이름은 라이카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09/15
라이카 -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내 이름은 라이카야. 대부분은 나를 몰라. 내가 지구를 떠난 것도 벌써 66년 전의 일이니까. 지구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지구를 떠나지 않고 세상을 떠났지만, 난 지구 밖에서 떠났어.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지구 밖에서 최후를 맞은 것은 타향에서 최후를 맞은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문제야.

    서운함이나 회한 같은 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 나는 너무 짧게 살았어. 1954년에 태어나서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 안에서 세상을 떠났어. 겨우 3년을 살았지. 이제 알 것 같다고? 그래, 맞아. 내가 바로 인간들보다도 먼저 지구를 떠나 푸른 지구를 바라보았던 바로 그 ‘라이카’야. 

    내가 본 지구는 인간들이 본 지구보다 더 푸른 지구였어. 물론 인간보다 먼저 지구를 바라본 유명한 존재들은 나 말고도 많아. 최초는 미국에서 보낸 붉은털 원숭이 알버트 2세였고, 나보다 먼저 다녀온 개들도 있었어. 그래도 인간들보다 더 푸른 지구를 본 것은 맞아. 이제 더는 푸르지도 않은 지구지만 말이야.

    내 인생은 참 기구했어. 난 모험을 꿈꾸지 않았어. 모스크바 시내를 떠돌며 음식 쓰레기나 주워 먹으며 살았는데, 우주라니! 그건 절대 명예가 아니야. 처음 떠오른 단어는 단 하나...
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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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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