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6/16
  소설이란 바로 이처럼 이야기가 풍성해야 재밌는 거다, 모름지기 장편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라고 생각하며 야금야금 책을 읽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선 폭설로 서른 시간 이상 고속도로에 사람들이 갇혀버리는 그야말로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사건임에 틀림없는 그 사건에 대해 고개를 살짝 돌리기만 하면 난 결국 국외자에 다름 아니다.

  시커먼 고속도로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니 정말 무서웠겠군, 게다가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니 그 사이 사람들은 울화통이 터져도 서너 통 터졌겠군, 100년만의 폭설이라는데 그나저나 해마다 기록갱신이면 이제 기상이변쯤은 이야기거리도 안 되겠군, 그나저나 대전 사시는 어머님이 태어나 처음보는 눈이다고 했을 때 속으로 허풍이 심하시네라고 생각한 건 결국 내 실수였군, 등속의 혼잣말을 뇌까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한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번의 일처럼 거대하고 무리지어 발생하는 사건에 따라 붙는 개인의 상황과 너무나도 은밀하여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몇 사람만이 겨우겨우 알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 이렇게 두 가지. 그리고 소설은 바로 이 두 번째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니까 재난영화처럼 공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개인의 경우가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개인에게만 정확하게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개인은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래의 이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이자 주제이다.

  “나는 거기에서 연필로 희미하게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하나 보았다. <Les moments de crise produisent un redoublement de vie chez les hommes.> 위기의 순간들이 사람들에게서 배가된 생명력을 창출해 낸다. 또는 좀더 간명하게 번역하자면. 사람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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