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때려쳤다. 기형도를 좋아한다던 문학 선생이 야구빠따로 애들을 때린다거나, 수학선생이 목을 조르며 싸다구를 날린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사실 부차적인 것이었다. 모범생인 나는 그 폭력들을 요리조리 비껴나갔다. 그러나 선생들은 언제든지 내 삶을 간섭할 수 있었으므로 내가 가질 수 있는 외로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와야했다.
학교를 관두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같이 태화강물에 빠져죽자며 울었다. 아니 학교 좀 안 간다기로서니 죽긴 왜 죽어. 이제는 모두 농담처럼 느껴지는 그 지랄들의 우여곡절을 거치고서야 학교를 때려칠 수 있었다. 자퇴 전날까지 야자를 했다. 모범생으로 남겠다는 오기였는지 뭔지. 다음 날 점심께에 갑자기 가방을 메고 학교를 빠져나올 때, 집에 가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던 친구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아마 조퇴한다고 말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그들을 만난 적 없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외롭고 싶어서 학교를 때려쳤는데, 때려치고보니 너무 외로웠다. 열일곱이었다. 나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가장 먼저, 내가 읽은 책들을 원망했다. 김승옥, 헤르만 헤세, 샐린저, 진중권, 홍세화, 박노자, 김규항 뭐 이런 이름들이 분별없이 머릿속에 왔다가 사라졌다. 죽은 자들에게 내 인생을 이리 만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살아있는 자들을 묶어보니 그것이 ‘진보신당’이었다. 2008년은 민주노동당 분당과 창당, FTA 반대, 촛불, 명박산성 같은 단어들로 채워졌다. 거기에 살짝이 나의 자퇴와 진보신당 입당도 적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