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의 무대 양평과 평양
1953년 5월 《신문학 新文學》에 단편소설 <소나기>가 발표되었다. 당시 아직 전쟁 중이었다. 같은 해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맺었다. 남북한 사이 총소리가 멈춘 순간이었다. 남북한 전쟁 중에 문인들이 월북, 납북되었다.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어도 작가는 보안법 때문에 글과 말을 함부로 못 했던 시절이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소나기>(황순원 작)
<소나기>의 무대로 작품 속에 양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 테마파크가 〈소나기〉의 장소적 배경이 양평군 관내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건립이 추진되었다. 양평군 서종면에 자리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2009년에 문을 열었다. 같은 해 천안시 풍산공원묘원 황순원 묘를 이장해 황순원(1915~2000) 묘역이 소나기마을에 있다. 황순원 묘는 전통 봉분 없이 돌 표석과 묘비로 되어 있다.
황순원 외가 목넘이마을은 전쟁 전에 발표된 <목넘이마을의 개>(1948)에 묘사되어 있다. 황순원은 평양과 이웃한 대동군 재경리면 빙장리氷庄里가 고향이고 외가는 대동군 재경리면 천서리(川西里)이다. (소나기마을 연대기에 쓰인 재경면은 재경리면의 오기다.)
https://www.yp21.go.kr/museumhub/contents.do?key=1030손 부분이 고지도 재경리다.
https://kostma.aks.ac.kr/e-map/mapSearch_AN.aspx?mType=anciNm&sType=anUCI&sWord=DYD_19_02_0303
황순원은 <소나기> 무대 지명을 기록하면서 전시중이라 평양이라 하지 못하고 글자 순서를 바꾸어 양평이라고 했다는 풍문이 있다. <소나기>에는 '양평'이라고 버젓이 쓰여 있으니 훗날 재경리면에 또 하나의 소나기마을을 조성하여 자매마을로 하는 방안이 있다. 이북이 고향인 황순원은 손자가 집시법 위반으로 파출소(현 지구대)에 끌려가곤 해 빼내온다고 애를 먹었다는 비화가 있다.
소나기가 전쟁중에 발표된 작품이었군요. 참 순수하고 맑은 소설이었는데 아이러니네요.
소나기가 전쟁중에 발표된 작품이었군요. 참 순수하고 맑은 소설이었는데 아이러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