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오
라지오 · 구름 구두를 신은 이야기보부상
2024/05/27
이명래고약
뾰루지라 불리는 종기가 난 적이 있나요? 요즘은 종기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종기가 왕들을 벌벌 떨게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종기는 ‘털주머니가 막히거나 세균에 감염되어 염증을 일으켜 고름이 차는 포도상구균 피부감염증’으로, 부스럼이라고도 불리지요.
종기는 의외로 오래된 질환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욥은 정수리에서 발바닥에 이르기까지 종기가 퍼져 기와장으로 몸을 긁는 괴로움을 겪습니다.(욥 2장7절) 
2000여년 전, 사마천이 ’사기’에 담은 ‘손자 오기열전’에도 종기가 등장합니다. 위나라의 오기는 전쟁에 나서 늘 병사들과 침식을 함께 하는 훌륭한 장수였지요. 어느 병졸이 종기로 고통을 겪는 걸 보고 달려들어 자신의 입으로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병졸의 어머니는 감사보다 통곡을 했습니다. 자신의 남편도 장군이 그리 종기를 빨아낸 데 감동하여 물불을 안 가리고 전투에 임하다가 목숨을 잃었던 그녀는 이제 아들마저 그리될 것을 슬퍼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종기는 켈트신화에도 등장합니다. 
다난족의 왕 누아다가 전투 중에 팔을 잃어 브레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왕이 된 브레스는 야비하고 잔혹했습니다. 가혹한 세금과 힘든 노역으로 백성들을 괴롭히고, 왕궁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인색하기 짝이 없었지요. 어느 날 다난족의 시인이 브레스를 찾아왔다가 냉대를 받고는 브레스를 꾸짖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아름답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브레스 왕의 온몸에 종기가 났습니다. 왕은 종기로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지요.

종기는 묘하게도 왕들을 주로 괴롭혔습니다. ‘신이 물려준 왕권’을 내세우며 ‘짐이 곧 국가다’라고 군림하던 태양왕 루이 14세도 항문에 난 종기에 시달렸지요. 그의 종기는 한동안 유럽 전역의 화제가 되었지요. 
우리나라의 왕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종기는 후백제의 견훤을 비롯하여 조선의 왕들을 괴롭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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