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일기

재재나무
재재나무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2023/06/05
몬스터 일기
/김개미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아름다울 수 있었다
아름다울 수 있어서
착할 수도 있었다
병약한 그를 위해 
나는 짐승처럼 밭일을 하고
요정처럼 집안일을 했다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
산기슭에 가득 찬 자고새 소리를 들으며
장난감 같은 마을에서
오래도록 지낼 수 있었다
그의 메마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사소한 슬픔의 말을 들으며
그의 캄캄한 세상을 열고 닫았다
그를 괴롭히는 깡마른 노인을 찾아가
딸기밭을 망치고 유리창을 깬 것을
두고두고 통쾌하였다
분명 잘못 태어났지만
그와 친구로 지내는 동안 
잘못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어서
누구도 나를 쫓지 않았고
나도 누구를 쫓지 않았다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들판의 꽃을 볼 때마다
천사처럼 가슴이 아팠다
나는 나중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고
마침내 그가 감은 눈을 감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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