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어머니의 젖을 떼는 아이의 고통은 붉고 썼습니다.
마땅한 이유식이 없던 시절에, 온종일 품에 달라붙어 모유를 보채는 아이는 일손이 바쁜 시절에 큰 짐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떼어놓기 딱하여 열 살이 될 때까지 젖을 물리는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모유가 묽어져 아이의 건강에도 좋지 않았고, 이가 나면서 젖이 모자라면 깨물기도 해 심한 고통을 주기도 하지요. 이럴 즈음이면 어머니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젖을 떼는데 가장 널리 쓰인 것이 금계랍입니다. 알약을 빻아 그 가루를 젖꼭지에 바르면, 아이는 그 쓴맛에 질겁을 하여 물러서게 됩니다.
60년대까지 한국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맛보아야 했던 인생의 쓴맛입니다.
금계랍은 학질로 알려진 말라리아의 치료제입니다. 학질은 금계랍이 전해지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병고에 빠뜨리고, 생명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사흘 간격으로 찾아오는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게 하는 학질의 고통이 오죽 심하면 ‘학을 뗀다’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이 끈덕진 질병은 1880년 프랑스의 군의관인 라브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이 말라리아 원충을 발견하고, 1897년 영국의 병리학자 로널드 로스 경(Sir Ronald Ross)과 이탈리아의 동물학자 조반니 그라시(Giovanni Battista Grassi)에 의해서 모기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말라리아는 주로 오염된 바람이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풍사(風邪)라 했고, 서양에서는 ‘malus(나쁜) aria(공기)’라는 뜻의 ‘말라리아(malaria)’라 불렀답니다.
말라리아의 치료제는 페루의 원주민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말라리아에 걸린 원주민들이 키나(cinchoca)라는 나무껍질을 약으로 쓰는 걸 본 예수회 선교사들이 1632년 스페인으로 들여오며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