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강화 vs 방역 완화,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이 글은 코로나19와 백신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백신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질병관리청-코로나19예방접종 공식 홈페이지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병상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지만 정부는 방역 강화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렵게 시작한 단계적 일상회복을 되돌려 과거로 후퇴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거리두기 조치를 도입하는 대신 추가접종(부스터샷)과 의료체계 대응을 보강하는 방향의 "특별 방역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정부가 방역 강화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반발입니다. 지속되는 유행 가운데 제대로 장사를 못하던 자영업자들에게, 정부는 백신 접종을 마칠 때까지만 인내해달라고 설득해왔습니다. 접종률 70%를 넘기고 힘겹게 '일상회복'을 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결정을 번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누르기엔 현 체계 내 손실보상의 범위나 규모도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현재 대응으로 위기를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추가 접종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리고 병상 확보도 한계가 있습니다. 유행이 잡히지 않으면 이미 지쳐 있는 의료진들에게 더 과부하가 걸립니다. 시민들의 '일상'과 의료진들의 '일상'에 괴리가 생깁니다. 의료진이 버티고 버티다 하나 둘 그만두게 되면 일손이 부족해져 코로나19 대응은 더 어려워집니다. 악순환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상황을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손해의 총량은 정해져 있되, 방역을 강화하면 자영업자가 힘든 대신 의료진이 편하고, 반대로 방역을 완화하면 자영업자는 이득을 보는 반면 의료진은 번아웃되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방역을 강화한 다음날엔 "자영업자의 눈물"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방역을 완화한 다음날엔 "의료진의 한숨"이란 뉴스가 나온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돌기도 합니다.

---

단기적으로는 방역 강화와 일상 회복이 제로섬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방역을 강화하여 사람들이 외출을 줄이면 당연히 자영업자 매출이 줄어듭니다. 경제 전체도 악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지난해 작성했던 보고서에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정부 대응의 강도를 나타내는 엄격성 지수와 2020년 2분기 경제성장률 간에 뚜렷한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납니다. 즉, 정부가 강력한 방역 조치를 하면 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집니다.
https://www.kiep.go.kr/gallery.es?mid=a10102020000&bid=0003&act=view&list_no=3468&cg_code=

그러나 시계를 조금 늘려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경기침체가 두려워 유행에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결국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유행이 퍼져 의료체계가 붕괴할 위기에 처하면 정부도 어쩔 수 없이 강한 조치를 도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체계가 압박을 받으면 코로나19 외 다른 질환의 진료에도 차질을 빚어 인명피해가 커집니다(실제로 초과사망은 코로나19 피해가 큰 곳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 상황에선 정부 조치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이동을 줄이기 때문에 어차피 경제활동은 위축됩니다. 뒤늦게 개입하면 유행 통제가 더 어려워져 오히려 고통의 기간을 늘릴 뿐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2020년 1년 동안의 코로나19 피해와 경제 피해 사이 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을수록 경제 피해도 컸습니다. 우리나라, 중국, 뉴질랜드, 호주,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코로나19 피해도 비교적 적으면서 경제 피해도 덜 봤습니다.

주. x축은 백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에 로그를 취한 값, y축은 2015~19년 평균 경제성장률 대비 2020년 경제성장률 하락분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 관계가 또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차단 전략만 고집할 경우 특정 계층의 경제적 피해가 커집니다.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와 폐업은 곧 임대업자의 금융비용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지속적인 실업은 구직자의 근로의욕을 감소시키고 경제활동인구를 감소시킵니다. 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으면 경제성장을 위한 인적자본이 축적되지 않습니다. 돌봄 수요 증가로 (주로) 여성인력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후퇴합니다. 장기간의 거리두기는 각종 보건, 사회 분야의 피해를 발생시키고 양극화를 불러일으킵니다. 빈곤층이 많아지면 세수가 줄고 지출은 늘어 국가 재정이 악화됩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쌓이면 결국 경제성장 동력이 훼손되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저해됩니다.

요약하자면, 방역을 강화하면 강화하는 대로, 완화하면 완화하는 대로 문제가 생깁니다. 강화나 완화로 자영업자 또는 의료진에 각각 발생하는 피해와 이득은 사실 일시적인 것입니다. 비용효율적 대응을 개발해 방역과 일상 사이 균형점을 찾지 않으면 고통의 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모두에게 부과됩니다.

---

그래서 소위 '위드 코로나'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백신 맞고 (단계적으로) 일상을 회복하는' 게 위드 코로나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방역 완화가 핵심적인 조치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병의 위험'과 그 위험을 감소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모두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백신 접종, 치료제 개발과 위생수칙 준수를 통해 질병의 위험을 낮추고, 의료체계 보강과 인식 전환을 통해 거리두기 완화로 어느 정도 질병이 퍼져도 감당해낼 여력을 늘려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어야 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제 최근 보고서에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이런 시스템이 적절히 마련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변이 출현이라는 변수까지 등장한 이상 준비되지 않은 완화를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시기를 놓친 대응은 경제적으로도 더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지금은 신속한 개입이 필요한 때입니다. 개입의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조치와 장기적 관점에서의 방역체계 전환 지속 역시 필요하겠습니다(여기에 조금 적어뒀습니다).

다시 어려운 시기가 되었습니다. 함께 대응해야만 고통의 총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연대의식을 다시 한번 발휘하여 이 겨울도 잘 극복해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