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0
오세훈 서울시는 백사마을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허남설 님의 글을 읽기 전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를 먼저 보았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에 발목 잡힌 백사마을"이란 제목으로, 서울시가 부당하게 백사마을의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사 제목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기사의 이 부분에 멈췄습니다.
허남설 님의 글을 읽기 전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를 먼저 보았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에 발목 잡힌 백사마을"이란 제목으로, 서울시가 부당하게 백사마을의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사 제목입니다.
백사마을 사정에 밝은 한 건설관계자는 “결국 공사비 산정과정에서 사업이 가로막힌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시공사를 뽑을 때 예가(예정가격)를 받는데 분양아파트 공사비는 3.3㎡당 500만~520만원으로 책정된 반면 주거지보전구역 내 저층형임대주택 공사비는 3.3㎡당 1150만원 수준으로 책정된 것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필자 강조).
저는 이 부분을 읽고 먼저 놀랐고, 다음으로 궁금했습니다. 공공주택에 적용하...
@허남설님_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쭤보신 바에 대해 답변드릴 사항과, 추가로 조금의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본격적으로 답글을 쓰기 전에, 서로 동의가 어려울 것 같은 지점부터 긋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도시계획 및 도시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규모의 경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가장 먼저 쓴 글도 도시와 규모의 경제에 대한 글이었습니다(https://alook.so/posts/Azvtrl). 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원순 시장 시기부터 방향인, (원형의) '기능'을 보전하는 저층개발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논의의 범위로 끌어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판을 키우는 것이나 이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여쭤보신 사항에 대해 답을 드려야겠죠.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알고 있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원형) 기능보전 원칙의 개발부터, LH가 두손들고 나간 후, 이상한 형태의 국제공모(저는 여기서부터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생각합니다) 이후 필연적으로 닿은 주민들과의 마찰을 거쳐 대표설계사의 교체가 있었던 것까지 알고 있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는 말씀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3일에서 백사마을의 겨울나기를 다루기도 했고, 백사마을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박원순 시장이 (원형) 기능보전 원칙을 천명한 이후부터 언론에 꽤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잘 모르더라도, 이러한 흐름은 꽤 알려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과 의사결정자들의 설득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으신 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잘라말해, 의사결졍자들을 설득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분양가상한제 기본형건축비 고시금액 두 배 수준의 ㎡당 건축비를 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서울특별시에, SH에, 시급한 사업이 백사마을 프로젝트만 있는 게 아닙니다. 파이는 한정되어있습니다. 결국 한정된 파이를 누가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산배분에 문제에서, 상이한 분야별로 치열한 논리싸움(정치적 결정도 결국에는 그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같이 묶일 수 있습니다)이 전개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원형) 기능보전과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도라는 논리가, 과연 공공임대건축에 분양가상한제 기본형건축비의 두 배 넘는 단가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탄탄히 구축되었을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오로지 예산의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시뮬레이션 해 보겠습니다. 지방재정이 투입될 총사업비 500억원 넘는 사업이니 규모상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 대상 사업이 될 거고, 지방재정법상 타당성조사도 받게 될 겁니다.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별도의 전문가를 꾸려 건설 및 건축을 포함한 건축비의 적정성 등이 검토될겁니다. 업무상 광역지자체와 중앙정부 등에서 몇 년 동안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조달청의 공공건축 유사사례나 분양가상한제 기본형건축비와 같은 기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에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사 결론에서 좋은 소리 나올 리가 없습니다.
타당성조사가 끝났다고 끝이 아닙니다. 타당성조사 결과에 기반하여,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에서 다수의 위원들의 검토가 이루어집니다. 이 논의 과정에서 타당성조사 검토내용과 최초안의 격차에 대한 논쟁에 따라 추진 여부가 결정될 겁니다.
이 과정을 넘어 적정 또는 조건부 추진 판정을 받았다 칩시다. 이 판정을 받아야 본예산에 이 사업을 밀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구된 예산을 사업일정에 맞춰 배정받기 위해서는, 투자심사를 통과한 다른 사업들과 또 경쟁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체계적인 논리를 세워야 하는 것은, 오로지 기획자들의 몫입니다. 이건 아쉬운 부분이 아니라 기획자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게 약하고 근거가 티미하면, 예산실 담당자를 상대해야 하는 실무자들도 강한 주장을 하기 어렵습니다.
답변을 듣고 더 의아한 부분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공들이고, (possible이 아닌) feasible한 계획을 만들기 위한 별도의 건축가가 있었는데도 왜 저런 터무니없는 단가를 기반으로 계획을 수립했는가입니다. 공공부문 건축 프로젝트가 어떠한 절차와 단계를 거쳐 추진되는지 아는 사람이 잡은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최초의 선례가 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산제약이 느슨한 상태에서 고가의 건축비로 구축된 선례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비용을 제시하는 프로젝트여야 확대가 가능할 테니까요.
여담이지만 국책연구원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민간에서 설계 쪽을 하시는 분들 모두 이 프로젝트의 단가에 대해 좋은 소리 하시는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덧붙입니다(더 심한 표현과 함께 프로젝트 참여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옮기지 않겠습니다).
허남설님께서 '관심의 호소'라고 하신 부분은 깊게 와닿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을 가지면 이러한 프로젝트의 추진이 보다 힘을 받을 것이라는 부분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feasible한 계획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합니다. 표준건축비의 두 배를 들고오는 공공건축을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예산실무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동의에 대해서는, 결국 여론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활동가들을 동원한 시위, 홍보 활동이건, 지역에 근간을 둔 정치인을 동원하건 말이죠. 시민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관심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을 조직하여 동원하는 것도, 온전히 기획가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핀트가 나간 부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결코 극단적인 두가지 선택지만 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원글의 "예전 모델로 돌아가면 되는 일입니다. 임대주택을 구석에 몰고, 면적을 줄이고, 닭장처럼 세우면 됩니다." 은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의 이 문장에서는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원안 추진과 예전 모델의 회귀만이 가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공사비 부분에 일정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과 제가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군요. 제 글의 p. s. 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주택 부분을 제외한 경관/편의시설에 투입되는 과도한 비용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쳐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예산제약하에서 이상적 계획은 현실에서 조정되는 구체화 과정에서 깎여나갈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과정에 공공건축의 추진의 예산과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들어가는 편이 좋겠죠.
말씀을 보태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뼈아픈 지적을 조목조목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제 생각도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미처 시간을 내지 못했네요.
일단 이견부터 말씀드리기 위해 여쭌다면, 선생님께서는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존재를 아셨는지요? 아마 제 글에 공감을 표하신 분이든 아닌 분이든 대부분 얼룩커들이 몰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많은 부분을 ‘기획자(건축가)들이 시민과 의사결정권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고 규정하는 데 할애하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게 사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10년 넘게 서울에서 새로운 임대주택을 만들자는 기획이 진행되고 있었고, 숱한 보도자료와 기획기사들이 나왔지만, 사실 대다수 서울시민은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서울시가 이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긴 했지만, 그런 과정들이 공론화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느 기자가 취재해 기사를 썼고, 저는 그 기사를 인용해서 여기에 글을 썼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시민을 상대로 한 ‘설득의 시간’은 이제 겨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일개 관찰자일뿐이고, 제가 알기로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도 이제 그런 자리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 오기까지, 의사결정권자들을 상대로 한 설득의 시간은 과연 어땠을까요. 물론 저도 내부자는 아니기 때문에 무려 10년의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각 주체들 즉, 서울시와 SH, 시공사, 건축가들 사이에 그 긴 세월 동안 소통이 없었을까요.
제가 아는 이야기를 보태자면, 건축가들이 그 부분에 관심 없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들에 더해 프로젝트의 시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은 건축가 한 명이 별도로 있습니다. 공사비를 현실적으로 맞추기 위한 표준화 작업 등을 수행하고 여러 건축가 사이를 조율했습니다. 건축비가 치솟는 공공주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서울시와 SH는 그냥 손을 놨던 걸까요? 설득의 책임을 기획자들에게만 돌리시는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다만, 이제 본격적인 설득의 시간이 시작됐을 때, 이 프로젝트가 극복해야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아주 잘 설명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사비 부분에 일정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코 극단적인 두가지 선택지만 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그저 제가 알음알음 취재한 바에 따라 유추하는 것입니다만, 저는 지금 대립하는 양측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타협하되, 제가 주장한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가치를 잃지 않는 수준으로 타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힘을 관심으로써 보태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글을 쓴 것입니다. 우리가 임대주택을 다뤄온 현실을 보건대, 무관심 속에서는 백사마을 프로젝트가 연속적인 분포 속에서 겨우 설 수 있는 작은 점 하나도 찾아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공사비를 비싸게 책정해야 남는 돈이 많아지고 그래야 나눠 먹는 분들이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취업난, 저출생, 부동산 문제 갖은 일보다는 그런 일에 투자해야 정치인이라고 봅니다.
민중은 나약하지만 기득권은 무서우니까요. 민중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라고 보여지네요.
아, 배아파.
아, 약올라.
아, 속터져.
우리 나라는 건설사는 한국전쟁 직후에는 모르지만 현재에는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 자꾸 뭘 짓고 부수고 하며 돈을 버는 이가 많죠.
지어도 지방에 지어야 지방도 살 것인데....
말씀을 보태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뼈아픈 지적을 조목조목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제 생각도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미처 시간을 내지 못했네요.
일단 이견부터 말씀드리기 위해 여쭌다면, 선생님께서는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존재를 아셨는지요? 아마 제 글에 공감을 표하신 분이든 아닌 분이든 대부분 얼룩커들이 몰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많은 부분을 ‘기획자(건축가)들이 시민과 의사결정권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고 규정하는 데 할애하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게 사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10년 넘게 서울에서 새로운 임대주택을 만들자는 기획이 진행되고 있었고, 숱한 보도자료와 기획기사들이 나왔지만, 사실 대다수 서울시민은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서울시가 이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긴 했지만, 그런 과정들이 공론화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느 기자가 취재해 기사를 썼고, 저는 그 기사를 인용해서 여기에 글을 썼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시민을 상대로 한 ‘설득의 시간’은 이제 겨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일개 관찰자일뿐이고, 제가 알기로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도 이제 그런 자리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 오기까지, 의사결정권자들을 상대로 한 설득의 시간은 과연 어땠을까요. 물론 저도 내부자는 아니기 때문에 무려 10년의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각 주체들 즉, 서울시와 SH, 시공사, 건축가들 사이에 그 긴 세월 동안 소통이 없었을까요.
제가 아는 이야기를 보태자면, 건축가들이 그 부분에 관심 없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들에 더해 프로젝트의 시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은 건축가 한 명이 별도로 있습니다. 공사비를 현실적으로 맞추기 위한 표준화 작업 등을 수행하고 여러 건축가 사이를 조율했습니다. 건축비가 치솟는 공공주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서울시와 SH는 그냥 손을 놨던 걸까요? 설득의 책임을 기획자들에게만 돌리시는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다만, 이제 본격적인 설득의 시간이 시작됐을 때, 이 프로젝트가 극복해야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아주 잘 설명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사비 부분에 일정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코 극단적인 두가지 선택지만 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그저 제가 알음알음 취재한 바에 따라 유추하는 것입니다만, 저는 지금 대립하는 양측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타협하되, 제가 주장한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가치를 잃지 않는 수준으로 타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힘을 관심으로써 보태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글을 쓴 것입니다. 우리가 임대주택을 다뤄온 현실을 보건대, 무관심 속에서는 백사마을 프로젝트가 연속적인 분포 속에서 겨우 설 수 있는 작은 점 하나도 찾아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허남설님_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쭤보신 바에 대해 답변드릴 사항과, 추가로 조금의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본격적으로 답글을 쓰기 전에, 서로 동의가 어려울 것 같은 지점부터 긋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도시계획 및 도시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규모의 경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가장 먼저 쓴 글도 도시와 규모의 경제에 대한 글이었습니다(https://alook.so/posts/Azvtrl). 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원순 시장 시기부터 방향인, (원형의) '기능'을 보전하는 저층개발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논의의 범위로 끌어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판을 키우는 것이나 이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여쭤보신 사항에 대해 답을 드려야겠죠.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알고 있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원형) 기능보전 원칙의 개발부터, LH가 두손들고 나간 후, 이상한 형태의 국제공모(저는 여기서부터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생각합니다) 이후 필연적으로 닿은 주민들과의 마찰을 거쳐 대표설계사의 교체가 있었던 것까지 알고 있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는 말씀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3일에서 백사마을의 겨울나기를 다루기도 했고, 백사마을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박원순 시장이 (원형) 기능보전 원칙을 천명한 이후부터 언론에 꽤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잘 모르더라도, 이러한 흐름은 꽤 알려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과 의사결정자들의 설득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으신 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잘라말해, 의사결졍자들을 설득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분양가상한제 기본형건축비 고시금액 두 배 수준의 ㎡당 건축비를 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서울특별시에, SH에, 시급한 사업이 백사마을 프로젝트만 있는 게 아닙니다. 파이는 한정되어있습니다. 결국 한정된 파이를 누가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산배분에 문제에서, 상이한 분야별로 치열한 논리싸움(정치적 결정도 결국에는 그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같이 묶일 수 있습니다)이 전개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원형) 기능보전과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도라는 논리가, 과연 공공임대건축에 분양가상한제 기본형건축비의 두 배 넘는 단가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탄탄히 구축되었을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오로지 예산의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시뮬레이션 해 보겠습니다. 지방재정이 투입될 총사업비 500억원 넘는 사업이니 규모상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 대상 사업이 될 거고, 지방재정법상 타당성조사도 받게 될 겁니다.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별도의 전문가를 꾸려 건설 및 건축을 포함한 건축비의 적정성 등이 검토될겁니다. 업무상 광역지자체와 중앙정부 등에서 몇 년 동안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조달청의 공공건축 유사사례나 분양가상한제 기본형건축비와 같은 기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에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사 결론에서 좋은 소리 나올 리가 없습니다.
타당성조사가 끝났다고 끝이 아닙니다. 타당성조사 결과에 기반하여,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에서 다수의 위원들의 검토가 이루어집니다. 이 논의 과정에서 타당성조사 검토내용과 최초안의 격차에 대한 논쟁에 따라 추진 여부가 결정될 겁니다.
이 과정을 넘어 적정 또는 조건부 추진 판정을 받았다 칩시다. 이 판정을 받아야 본예산에 이 사업을 밀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구된 예산을 사업일정에 맞춰 배정받기 위해서는, 투자심사를 통과한 다른 사업들과 또 경쟁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체계적인 논리를 세워야 하는 것은, 오로지 기획자들의 몫입니다. 이건 아쉬운 부분이 아니라 기획자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게 약하고 근거가 티미하면, 예산실 담당자를 상대해야 하는 실무자들도 강한 주장을 하기 어렵습니다.
답변을 듣고 더 의아한 부분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공들이고, (possible이 아닌) feasible한 계획을 만들기 위한 별도의 건축가가 있었는데도 왜 저런 터무니없는 단가를 기반으로 계획을 수립했는가입니다. 공공부문 건축 프로젝트가 어떠한 절차와 단계를 거쳐 추진되는지 아는 사람이 잡은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최초의 선례가 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산제약이 느슨한 상태에서 고가의 건축비로 구축된 선례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비용을 제시하는 프로젝트여야 확대가 가능할 테니까요.
여담이지만 국책연구원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민간에서 설계 쪽을 하시는 분들 모두 이 프로젝트의 단가에 대해 좋은 소리 하시는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덧붙입니다(더 심한 표현과 함께 프로젝트 참여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옮기지 않겠습니다).
허남설님께서 '관심의 호소'라고 하신 부분은 깊게 와닿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을 가지면 이러한 프로젝트의 추진이 보다 힘을 받을 것이라는 부분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feasible한 계획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합니다. 표준건축비의 두 배를 들고오는 공공건축을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예산실무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동의에 대해서는, 결국 여론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활동가들을 동원한 시위, 홍보 활동이건, 지역에 근간을 둔 정치인을 동원하건 말이죠. 시민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관심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을 조직하여 동원하는 것도, 온전히 기획가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핀트가 나간 부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결코 극단적인 두가지 선택지만 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원글의 "예전 모델로 돌아가면 되는 일입니다. 임대주택을 구석에 몰고, 면적을 줄이고, 닭장처럼 세우면 됩니다." 은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의 이 문장에서는 백사마을 프로젝트의 원안 추진과 예전 모델의 회귀만이 가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공사비 부분에 일정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과 제가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군요. 제 글의 p. s. 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주택 부분을 제외한 경관/편의시설에 투입되는 과도한 비용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쳐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예산제약하에서 이상적 계획은 현실에서 조정되는 구체화 과정에서 깎여나갈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과정에 공공건축의 추진의 예산과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들어가는 편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