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두 살씩 먹고 싶던 아이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1/23
빨리 두 살씩 먹고 싶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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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주의 김장하 선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말만 들어도 가슴이 더워지고 탄성이 튀어나오는 우리 시대의 어른 같더군요. 또 꼭 그리 특출하게 존경스러운 분은 아니더라도 소소하지만 살갑게 어려운 사람들 도우려 하고, 그를 위해 재능이든 여유든 사람이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을 쏟아붓는 분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22-3년 전의 어느 연말, 으레 찾아야 할 ‘따뜻한’ 아이템을 뒤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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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아이템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극단 ‘사다리’로 기억하는 어린이 연극 전문 극단이 있는데 이들이 해마다 서울대학교 소아암 병동을 찾아 연극을 한다는데 이걸 취재해 보면 어떤가 하는 것이었죠. 일단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재미없겠는데? 그러자 작가도 인상을 긁었습니다. 먹고 죽으려 해도 아이템이 없어. 결론적으로 다음 날 저는 서울대학교 병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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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은 성인암의 1%에 미치지 못하는, 매우 희귀환 질환이고, 그래서 소아암 환자들을 다루는 병원은 큰 병원에만 있습니다. 워낙 면역력 약하고 여린 아이들이다보니 이런 저런 특수한 시설도 많고 무엇보다 감염에 신경써야 했습니다. 취재하면서도 이것저것 가려야 할 게 많았죠. 에어 샤워 비슷한 소독도 처음 받아 봤고, 촬영하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소아암 환자들과 부모들은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죠. 그런 그들에게 극단 사다리의 공연은 작지 않은 이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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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사다리 포스터 앞에서 머리 박박 깎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모습은 아이템 재미없을 것 같다고 타박하던 저를 무안하게 했습니다. ‘방송적’으로야 재미없고 뻔한 아이템일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이리도 특별하고 근사한 구경거리요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장이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1년에 몇 안되는 기회였으니까요. “시청자가 안보는 방송은 의미가 없다”는 단언도 일리가 있지만 방송 만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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