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2002) 감상문
2024/03/25
드디어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피아니스트>를 보게 되었는데, 어떠한 특별한 기대도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세간의 평가처럼 뒤틀리고 억압된 욕망을 다룬다면 메시지가 그다지 멀리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이 둘이서 사는 가정생활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실로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던 관계의 기억들을 되살려주었다. 엄마는 40이 넘어서 음대 교수를 하는 딸의 귀가시간을 체크하고, 딸이 아직도 학부생인 것처럼, 너는 언제나 최고여야 한다고 말하고, 딸에게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품위 유지를 강제하고, 야한 옷도 못 입게 하는 등, 한도 끝도 없이 딸을 통제하는데, 이러한 통제를 통해 엄마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결국 딸이 자신에게 익숙한 모습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을, 정원사가 정원을 가꾸듯이, 주부가 자신의 가정에서 물건들을 세심하게 관리하듯이, 꼼꼼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는 이 모든 것이 딸을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은 전부 희생되었다고 믿을 수 있고 믿고 있다. 딸은 엄마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엄마 때문에 희생당했다고 믿고, 엄마도 자신도 불쌍한 희생자라고 느끼며, 그렇게 느끼면서도 엄마를 때리고, 또 그런 엄마가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다. 딸은 엄마 몰래 이런저런 일탈들을 한다. 하지만 엄마를 떠나지는 않는다. 사실 엄마를 떠난다면 그런 일탈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엄마가 있기 때문에 일탈도 있는 것이다. 엄마가 없다면 일탈은 더 이상 일탈이 아니다. 딸의 정신과 신체는 엄마와 너무 깊숙이 뒤얽혀 있다. 잠도 매일 같이 잔다. 모녀는 야스쿠니의 영령들처럼, 일본 골짜기마다 있는 무라의 구성원들처럼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엄마를 때리는 것은 자신을 때리는 것이며, 엄마를 위로하는 것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고, 엄마의 눈물이 자신의 눈물이며,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