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은 덕업일치. 언젠간 다시 이룰 수 있을 거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심지어 휴가가 다가오는 것이 싫고 출근하는 날이, 회사로 교육 받으러 가는 날이 좋았다.
우리 회사에서는 근무가능시간을 스스로 늘릴 수 있었는데, 실제로 휴가를 가기보다 출근을 더 하고 싶어서 그것도 신청하기도 했다. 동기들은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그만 두지 않을 줄 알았다.
전 직장이 유럽회사였기 때문에 재직하려면 유럽에 가서 살아야 했어서, 나는 근무기간 6년 동안 독일에서 자취를 했었다. 부모님께서 한국에 들어와 살라고, 한국에서 한국회사를 다니며 더 안정적인 삶을 살라고 끝없이 말씀하실 때에도 나는 단 한번 흔들렸던 적이 없다. 독일의 정년퇴임 나이까지 꽉꽉 채워 일하고 연금까지 수령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놈의 코로나.
관광업계였던 전 직장은 코로나로 인해 사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의 산업이 침체되고 특히 관광업계는 거의 핵폭탄 급으로 무너져가면서, 항공사나 호텔 등 여기저기서 정리해고, 강제귀국 소식들이 들려왔다. 다행히, 우리 회사에서는 그렇게 매정하게 머리를 댕강 잘라버리는 피바람이 불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든 그렇듯이, 변화의 시작은 나 스스로에게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