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양대가리 구이와 터키의 아버지’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01
터키 이스탄불, ‘양대가리 구이와 터키의 아버지’ 
   
1.
의과대학 시절 친구 가운데 한 명은 생선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항상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달랐다. 곱게 썰린 무채 위에 가지런히 놓인 회는 활어든 선어든 관계없이 맛있게 먹었다. 참치 통조림도 아주 좋아했다. 추운 겨울이면 어묵을 파는 노점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전어 구이는 질색했다. 제주도 식당에서 흔히 마주하는 '갈치 통구이'를 보면 아예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녀석은 대가리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생선을 먹지 못했다. 녀석은 생선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아 도저히 젓가락을 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2012년 초겨울의 어느 날, 내가 마주한 요리를 봤다면 녀석은 기절했을 것이다. 커다란 식탁 중앙에 자리한 접시에 가운데를 잘라 펼친 양대가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잘 영념해서 오븐에 구운 터라 갈색을 띠었으나 반으로 잘려 펼쳐진 양대가리 양쪽에는 눈알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생선대가리에 있는 눈알도 무서워하는 녀석은 양쪽으로 펼쳐진 상태로 노려보는 양대가리의 눈알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녀석과 다르다. 양념과 토마토를 곁들인 양대가리는 먹음직했고 양대가리가 담긴 접시 외에도 내 앞에 놓인 작은 그릇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뽀얗고 걸쭉한 스프가 있었다. 곰탕, 내장탕, 돼지국밥의 사촌 같은 느낌의 스프였고 양의 위가 주재료였다. 그 걸쭉한 스프에 빵을 곁들이니 숙취를 달래기에는 최고의 조합이었다. 

숟가락으로 허겁지겁 뽀얀 스프를 퍼먹고 본격적으로 양대가리에 붙은 고기를 발라 먹으려는 순간, 멀리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2012년 초겨울 나는 이스탄불에 있었다. 무슬림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답지 않게 전통 증류주-라키-가 있으며 국민 맥주-에페스-회사가 건재하고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모스크 가운데서도 어렵지 않게 정교회 유적을 만날 수 있는 국가에서 라키를 퍼마신 다음날 오전, 해장을 위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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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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