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과 메두사호의 뗏목

재크와홍나무 · 글쓰는나부랭이
2024/07/10
이번 글에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과 「메두사호의 뗏목」 이라는 두 그림을 통해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초반 사회 모습을 조명해본다. 
두 그림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10여년을 간격으로 보는 프랑스 사회는 격변 속에 부침을 반복하며 헤매고 있었다.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Jacques-Louis David, 1808
Jacques 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1807)」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1805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정의 운명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역사상 인권을 처음으로 표방한 혁명이었다. 
민중은 삼부회의의 발족으로 혁명을 시작했다.
그들은 여러 계파로 분열되기는 했으나 대체로 개인 투표를 주장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공화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1805년, 대통령이었던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는 이러한 혁명에 대한 배신이었다. 



정권의 권위 확립
카이사르의 등장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한 켠에는 고대 로마 제국을 세운 카이사르가 나타나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대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대관식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인물들의 시선이 왕관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왕관이며 왕관은 권력을 상징한다. 
붉은 원 안의 인물은 고대 로마의 제정의 기틀을 마련한 카이사르이다. 
다비드는 카이사르를 출현시킴으로써 프랑스 제정의 권위를 치켜세웠다. 
즉, 고대 로마의 전통을 계승한 프랑스 제정의 신성함과 정통성을 내세우고자 했다.
교황 피우스 7세를 비롯한 가톨릭 권위를 나타내는 성직자들이 황제 나폴레옹의 조세핀 황후 증위식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시선이 특이하다. 
인자하고 기품이 넘쳐야 할 이들의 눈빛은 왕관에 꽂혀 욕망에 타오르기까지 하고 있다. 
특히 피우스 7세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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