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4/05/25
 
고양이는 아무 이유도 없이 이리저리 다리를 부벼대며 따라다니고 늦게 까지 깨어있던 덕분에 토요일 아침은 늘 피곤하기만 합니다. 자, 불을 피워봅시다. 먼저 라이터나 성냥 따위는 없다고 가정해보죠. 

싱크대 선반에 부싯돌이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부싯돌을 챙겨 나와 길가에 굴러다니는 여름 낙엽들을 주워옵니다. 불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불이 붙을 수 있는 것은 메마른 것,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것, 태어날 때부터 연기를 몸 안에 품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자세는 점점 낮아지고 손길은 하염없이 느려지며 주전자에 받아 놓은 찬물은 미지근해지고 있습니다. 
 
여름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저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몸 안에 연기를 품고 있는 것들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또한 절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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