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담론』, 관계론이라는 공허한 도식적 사고
2024/04/13
읽어야 할 책은 언젠간 읽게 된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이 계속 늘어나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강박처럼 나를 짓누르던 책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때가 찾아 온다. 그러고 난 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편한 마음으로 '이젠 정말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도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손에 쥐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니터 화면에 불러 내었다.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제1권, Du côté de chez Swann을.
단숨에 읽어야 하는 책이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백 년의 고독』을 읽을 때는, 마치 설화 속에 나오는 존재에게 사로잡힌 듯 꼼짝도 못하고 모든 정기를 빨리는 것처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는 아무 책도 읽지 못했다. 그런 종류의 책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런 강렬한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우연을 반복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조금 더 어릴 때라면 더 손쉽게 이루어지지만, 그렇게 빠져들기엔 이제 난 꽤나 회의적인 독서가가 되었으니까.
모든 좋은 책은, 이미 읽은 사람들의 두 가지의 반응으로 요약된다. "그걸 이제야 읽어?"라는 핀잔과 자랑─나는 이미 오래 전에 영접했노라 하는─, 그리고 처음 읽는 것에 대한 부러움─두 번은 경험할 수 없는, 그 첫 만남의 강렬함. 좋은 책을 늦은 나이에 읽는 것은, 정념의 강도는 희미해질 수 있지만, 더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기도 한다. 물론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책을 나이 들어 읽는 것이 과연 권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청춘의 시기에만 고유한 빛을 내는 책들이 있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전혀 다른 색을 띠게 되는.
아무튼 최근 읽는 책들은, 한 번 잡으면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인...
> 탈근대란 그렇게 전근대적 복귀가 아니라 개인이 고유한 실체가 아니라는 해체의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에 가깝다.
글의 주된 논지 및 주제와는 별 관련성이 없는 구절이긴 합니다만, 서구의 탈근대사상(흔히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인, 주체에 대한 해체론이 그렇게 독창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일례로,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해 찰떡궁합처럼 보완적 이데올로기(상부구조)로 기능한다는 이유로 틈만 나면 불교 (혹은... 타락한? 서구 불교)를 까는 지젝도, 서구 탈근대 사상의 개인 및 주체에 대한 이론적 통찰의 상당 부분을 이미 전근대 및 고대의 불교 사상이 이미 선취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거리낌없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는 근대적 개인주의 사상 같은 건 존재할 리 없었던 시대와 사회였죠.
https://bigthink.com/articles/slavoj-zizek-on-buddhism-and-the-self/
흥미롭게 잘 읽었으며 본문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